‘맥페란’ 처방 의사 금고형 선고, 보건소선 ‘처방 제한’ 움직임

오상훈 기자 2024. 6. 13. 17: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파킨슨병 환자에게 구토 치료제를 처방해 상태를 악화시켰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게 금고형이 선고됐다. 해당 판결을 두고 의료계에선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선 처방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판결을 의식해 부작용 대처가 어려운 약물은 처방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법원 “파킨슨병 고려했어야”
지난달 30일, 창원지법은 파킨슨병 환자에게 구토 치료제 ‘맥페란’을 처방해 환자 병세를 더 악화시킨 혐의(업무상과실치상)를 받는 의사 A씨의 항소심에서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실형은 면해,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 건 아니지만 민사 소송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A씨는 지난 2021년 속이 메스껍고 구토 증상이 있다는 83세 환자에게 구토 치료제인 맥페란을 처방했다. 환자는 이후 실신, 발음 장애, 무기력증을 겪는 등 파킨슨병이 더 악화해 A씨를 고소했다. 맥페란 주사액은 고령자에게 신중한 투여가 권고되는데, 특히 파킨슨병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은 “A씨가 환자의 파킨슨병 병력을 확인하지 않고 맥페란을 처방해 환자에게 피해를 줬다”고 판단했다.

◇반발하는 의료계, “정상적인 진료 행위”
다만 의료계에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판결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진 입장에선 약의 부작용을 예측하기 어렵고 개인의료정보 접근 등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 학회’는 11일 성명서를 내고 “의료 행위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나쁜 결과는 의료 행위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 어느 의사가 위 험부담을 무릅쓴 채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지키려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도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나라에서는 맥페란 외에는 급여로 처방 가능한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정상적이고 다른 대안이 없는 진료 행위에 대해 이것을 상해로 규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는 데 의사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소서 ‘처방 제한’ 움직임도
이번 판결로 노인과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에 대한 진료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 일부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는 처방약을 제한한다는 공지를 내걸기도 했다. 해당 공지엔 “부작용 발생 시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창원지법의 판결이 나옴에 따라, 부작용 대처가 어려운 보건소에선 감기약·피부 질환약 등의 처방을 제한한다”고 적혔다. 보건지소에서 밝힌 향후 처방이 제한되는 약물은 감기약(코푸시럽, 진통소염제, 항히스타민제 등)과 무좀약(플루코나졸, 다나졸 등), 피부 질환(스테로이드 연고), 비뇨기과 약(전립선비대증 약물) 등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처방 제한은 의사의 처방 및 진료와 관련된 행위로, 복지부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 파급 효과를 모니터링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 보건지소 입구에 붙은 ‘약물 처방 제한 공지’./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보건소 및 보건지소는 의료 취약지 진료 공백을 해소하는 교두보다. 병의원과 비교했을 때 진료비가 저렴해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전국에 보건소만 261개, 지소는 1400여개가 있다. 이번 판결로 처방을 제한하는 공중보건의들이 순차적으로 늘어난다면 특히 섬처럼 의료서비스가 제한되는 지역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중보건의는 “만약 약 처방을 안 해서 환자가 구토하다가 흡인이 발생했어도 의사가 책임져야 했을 것”이라며 “외래 경험이 적은 공보의들이 대부분인 보건지소에서는 차라리 처방을 제한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 지역이라면 환자에게 주변 병의원에 가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섬과 같은 오지라면 진료에 지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아 4명이 몇 분 사이 연달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의료진 네 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지만 결국 모든 의료진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소송을 우려한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인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면서 지원률이 2023년 기준 16%로 급락했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