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대물림 없다"…KAIST에 515억 기부한 정문술 전 회장 별세
성공한 국내 벤처기업 1세대이면서, 재산 대부분을 대학에 기여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이 숙환으로 12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정 회장은 1938년 생으로,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군 복무 중 인연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특채돼 18년간 근무했다. 퇴직 후엔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설립했다. 중앙정보부 근무 당시 해외 출장에서 일본 도시바 라디오 속의 IC(집적회로)를 보고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검사 장비업체로 시작한 미래산업은 이후 국산 반도체 수출이 늘면서 고속성장했다. 1999년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는 성과를 올렸다.
정 회장은 KAIST와 인연이 각별하다. 미래산업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01년, 처음으로 300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 개인의 고액 기부는 국내 최초였다. 이어 2013년 다시 215억원을 보탰다. 정 회장의 기부금은 당시 국내 이공계 대학 최초 융합학과인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하는 토대가 됐다. 두 번째 기부는 국내 대학 최초의 미래학·미래전략 학위과정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2014년 1월 기부금 약정식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약속 때문에 이번 기부를 결심했다”며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라고 밝혔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고인은 한국 최초로 개인 고액기부를 실천해, 대한민국 기부 문화의 초석을 놓았다”며 “기업인으로서도 그 이후의 삶 속에서도 미래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실천해오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2004)과 KAIST 이사장(2009∼2013)등을 지냈다. 2014년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됐다. 같은 해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도 받았다. 유족은 양분순씨와 사이에 2남3녀가 있다. 평소 자녀가 회사(미래산업)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명단을 밝히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 02-2030-7940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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