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놀다가 만났다, 50대 내 안의 열 살 소년을

김대홍 2024. 6. 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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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빠 두 꼬맹이 양육기⑬] 불 붙은 장난감 수집욕... 아빠는 수시로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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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기자]

"오빠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아니면 애들이 도와 달래서 하는 거야?" 

앉은 자리에서 3시간째 블록 조립 중인 나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한다. '헉', 들켰다. 몇 달 전 우리 집에 블록 조립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20조각으로 시작했다가 30조각, 50조각, 100조각으로 올라갔다. 

일곱 살인 아들은 20조각은 금세 끝냈다. 6살인 딸은 20조각을 때로는 완성하고 때로는 봉투만 뜯고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들은 30조각까지는 거뜬히 해냈다. 아들은 30조각 정도가 '딱' 적당했지만 문제는 나였다.

나는 30조각이 너무 시시했다. 100조각도 금방이었다. 어느새 블록은 200조각을 넘어서고 1000조각까지 늘어났다. 그 와중에 미니블록, 초미니블록도 사들였다. 

우리 집 여기저기에 조립블록이 쌓이기 시작했다. 택배가 올 때마다 아들과 딸이 달라붙어 이게 마치 참치라도 되는 것처럼 작은 가위로 하나하나 해체를 했다(우리 집 아이들은 손가락만 한 어린이 가위를 쓴다). 아들은 택배를 보면 "이거 내 거야?"라고 묻고, 딸은 조용히 택배를 뜯어 블록들을 다 꺼내려 한다(딸의 행동이 아들의 그것보다 훨씬 무섭다). 

아들에게는 "아빠랑 너희들이랑 같이 하려고 산 거야"라고 말하고, 비닐을 뜯어서 내용물부터 모두 꺼내려는 딸의 손을 황급히 붙잡는다. 딸은 10개, 20개 정도 되는 조각은 꽤 집중해서 조립했다. 그 모습이 기특했다. '저 나이에 집중이란 걸 하다니.' 아들은 20조각 정도는 '시시하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이걸 여섯살이 만들었다고요? 
 
 레고와 나(자료사진).
ⓒ 픽사베이
 
내가 조립블록에 눈을 뜬 건 지난해 말이었다. 아들 친구네 초대를 받았다. 거실에서 눈에 띈 건 어마어마한 조립블록이었다. 우주선과 발사대, 우주기지는 '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정교했다. 아들 친구네 아빠에게 "직접 만들었냐"라고 물었다. 아들 친구네 아빠는 "아니요. 저는 살짝 거들었고, 아들이 다 만들었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이 어마어마한 걸 6살짜리가 만들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우주선 발사기지를 쳐다봤다. 우리 집에도 우주선 발사기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6살짜리 아들 친구가 남다르긴 했다. 

6살임에도 1부터 100까지 거침없이 외웠고, 벌써부터 더하기 빼기를 했다. "100까지 셀 수 있다고?"라며 놀랐더니 "아니요. 더 셀 수 있어요"라며 101, 102를 계속 외워나갔다. 아들 친구네 부자와 조립블록 앞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아들은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바빴다. 

그렇게 이튿날부터 '조립블록 검색-사들이기'가 시작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하지 못한 결핍 같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19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때 장난감은 꽤 귀했다. 장난감이라곤 공이나 종이로 만든 딱지, 나무를 깎아 만든 도구들뿐이었다. 주로 바깥에서 뛰어다니며 놀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곤 했다. 장난감은 어쩌다 한 번씩 혜성처럼 오는 선물이었다. 

아버지는 장난감 선물을 잘 사주시는 편이었다. 사달라는 걸 "안돼"라고 하신 적은 없었다. 괜히 혼자서 눈치를 봤다. 장난감 가진 친구들은 많이 없었고, 어쨌든 괜찮은 장난감은 그 당시 수준으론 꽤 비쌌다. 손재주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장난감 조립은 나와는 먼 것이라 생각하며 나이가 들었다.

세월이 지나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어린 시절 미처 소화하지 못한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누가 봐도 과몰입... 아내가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조립블록에 푹 빠졌는데, 누가 봐도 '과몰입'이었다. 어떤 날은 블록을 조립하느라 새벽 3시에 잠이 들었다. 잠깐 집중했나 싶은데 어느새 2시간이 지나 있었고, 조금 더 해야지 하면 3~4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였다. 목은 아프고, 허리가 욱신거렸으며 눈은 침침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장난감 조립을 한 기억이 몇 번 되지 않는 것에 비춰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가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나온 아내가 "이제 그만 자"라고 말하면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아, 이제 자려고 했어"라며 '후닥닥' 조립블록 뚜껑을 덮었다. 이럴 땐 6살, 7살 아이를 키우는 50대 아빠가 아니라 영락없는 10세 소년이었다. 

나이 많은 아빠인 나는, 아이들과 지낼 때 때때로 아이들과 별 차이 없는 꼬맹이로 돌아간다. 놀아주기보다는 같이 놀고 싶다. 놀아주는 건 별로 재미가 없고 같이 노는 게 재미있다. "어떻게 놀아야 내가 재밌을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미니자동차 수집도 첫째 아들이 중장비 장난감 수집에 한창 빠졌을 때 생긴 취미다. 아이가 장난감에 흥미가 생기자 장난감을 사고 싶다며 외치기 시작했다. 사고 나면 또 사달라 했고, 아침에 사고 나면 저녁에 또 사달라 했다.

마트에 가면 장난감 코너를 꼭 보겠다 했고, 보고 나면 꼭 사달라고 졸랐다. 대책이 필요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뒤 '생일과 성탄절에 산다. 다른 사람이 선물하는 건 어쩔 수 없다'라고 정했다. 똘똘한 첫째가 따졌다. "아빠, 그 원칙은 누가 정하는 거야?" 할 수 있는 모든 논리를 동원해서 우리 집 원칙을 통과시켰다.

원칙은 그러했지만, 이름 난 국민가게(?)에서 종종 장난감 살 기회가 생겼다. 엄마 아빠 친구들이, 친척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다이소'로 향했다. 아이들이 집어드는 장난감은 별로 탐이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 눈에는 집 공간을 차지하는 애물단지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애물단지가 아닌 장난감을 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온라인 상점에서 실제 모델을 흉내 낸 정밀 자동차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어느 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숫자가 많아졌다.

아내는 보고도 모른 체했다. 가끔씩 너무 많이 샀다 싶으면 "뭐, 네 돈으로 사는 건데 어쩌겠어..."라고 말하며 사라질 뿐이었다.
 
 어른이 아이를 키우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어떤 측면에선 맞다. 어떤 측면에서 아이에게 배우고, 어떤 측면에선 똑같이 아이가 돼서 어울린다. 아빠는 종종 아이가 된다.
ⓒ 김대홍
원래 불이 한 번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법이다. 불은 여기저기 옮겨 붙으며 기세가 더 커지는 게 본디 성질이다. 50대 아빠와 공존하던 또 다른 자아, 즉 부캐인 열 살 소년은 점점 더 힘이 세졌다. 스카이콩콩을, 망원경을, 휴대용 현미경을, 미니드론을, 부메랑을 마구마구 사들였다. 

방이 빽빽해졌다. 어느 순간 빈자리가 사라졌다. 아내는 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아휴...' 하고 한숨을 쉬며 황급히 빠져나갔다. "방이 터지겠네, 터지겠네"라는 말이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아이들은 신났다. 자기들 방보다 더 장난감이 많은 아빠 방에서 한참을 놀았다. 자기들 장난감이야 자기들 방에 훨씬 많았지만, 아빠 방에 있는 장난감은 아이들 눈에도 근사하게 보였나 보다. 

다행인 건 불은 결국 꺼진다는 점이다. 약 2년간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어느 순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꺼질 듯 말 듯한 약불 정도가 됐다. 약불이긴 하나 꺼지진 않았다. 궁금하긴 하다. 이 약불이 이 상태로 머물다 결국 꺼질지, 아니면 어느 순간 다시 '활활' 불타오를지. 

양육은 어른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라 한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 말도 맞지만, 때때로 아빠의 어린 자아와 아이들이 함께 노는 과정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들이 혀를 '끌끌' 차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한 명 더 늘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더 철들지 않고 나이들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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