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자폐인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는 책
[민종원 기자]
우리가 흔히 자폐라고 부르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자폐스펙트럼이라고 말해야 한다.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가 있기에 자폐는 자폐스펙트럼이라고 부를 때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 <패턴 시커>는 자폐스펙트럼에 대해 알려준다기보다 여기 속한 이들이 인류의 진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참고로, 자폐스펙트럼에 속한 이들을 부를 때 우리는 간략한 표현으로서 자폐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자폐와 인류의 진보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니,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진보에 기여했는가?' <패턴 시커>를 쓴 사이먼 배런코언은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자기만의 세계? 자폐인을 보는 좁은 시각
자폐인이 아닌 사람이 자폐인을 볼 때 느끼는 가장 첫 번째 느낌은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이 말은 자폐인을 대다수의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자폐인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는 관련이 없거나 지극히 적다는 말이기도 하다.
▲ <패턴 시커> 겉표지 |
ⓒ 디플롯 |
자폐인은 자신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많은 이들은 자폐인들의 표현을 알아듣기 어려워하며 자폐인들이 설명하는 이 세상의 모습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자폐인들은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아내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폐인이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자폐인이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패턴 시커>는 이같은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준다.
패턴 시커, 이는 이 책이 자폐인을 일컫는 말이며 자폐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이먼 배런코어는 많은 자폐인이 일정한 체계(patter)을 발견하는 재능을 갖고 있어 그것을 통해 자폐인이 아닌 이들이 쉽게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곤 한다고 말한다. 또 이게 인류 진보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세상과 사물의 어떤 체계를 발견해내는 것은 세상과 사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힘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세상의 다른 시각... '체계화 매커니즘'의 힘
심리학자이자 자폐 연구자인 사이먼 배런코어는 지난 35년간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오면서 알게 된 인간의 발명에 관한 자신만의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1) 인간만이 뇌 속에 만일-그리고-그렇다면이라는 체계(pattern)을 갖고 있고, (2) 인간은 인간만이 지닌 체계를 통해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왔고, (3) 이러한 체계화 매커니즘이 인간을 다른 생물종을 뛰어넘게 만들었고, (4) 체계화 매커니즘은 발명가 및 수많은 기술적 전문가들의 마음에 높은 수준으로 담겨 있으며, (5) 이 매커니즘은 자폐인의 마음 속에도 높은 수준으로 담겨 있으며, (6) 체계화는 부분적으로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는 자폐인 및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은 일상 속에서 있을 때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유지하는 등 가장 단순한 사회적 과제조차 매우 어려워하지만, 자연 속에 있거나 실험을 할 때는 남들이 못 보고 지나치는 패턴을 쉽게 감지한다. 그들 자신은 왜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는지, 심지어 자기를 따돌리고 이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사실 이들이야말로 발명가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반대 특성을 지닌 사람, 즉 고도로 공감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엄청나게 높은 수준에 맞춰진 반면(다른 사람을 쉽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거나 느낄지도 모르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체계화 능력은 평균 이하다. ... 이제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이 인지적 공감 능력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즉 두 가지 능력 중 어느 한쪽을 택하면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식의 상호 교환 규칙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증거를 보게 될 것이다." <패턴 시커>, 94쪽
<패턴 시커>는 자폐인을 인간만이 지닌 체계화 매커니즘을 높은 수준으로 지닌 사람으로 보게 한다. 우리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자폐인으로서, 그러니까 '패턴 시커'로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체계화 매커니즘을 발휘한 사람으로 볼 필요가 생긴다. 이 책에 따르면, 자폐인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이다.
사이먼 배런코어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을 자폐인, '패턴 시커'로 다시 보게 하면서 에디슨을 이렇게 소개한다.
에디슨은 어릴 적 사람에게는 관심을 많이 보이지 않았고 무언가 일정한 체계(pattern)을 찾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왜, 라는 질문을 많이 했고 무언가를 반복해 읊어대곤 했다. 사이먼 배런코어는 에디슨의 모습을 두고 "끝없는 질문은 명료함을 추구하는 것"(18쪽)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에디슨이 질서있고 근거가 분명한 세상 그러니까 불안정성이 적은 체계있는 세상을 찾는 데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다, 불안정성이 적고 일정한 흐름 또는 일정한 체계가 있는 세상. 우리가 흔히 보는 자폐인의 모습이 이처럼 불안정한 세상을 낯설하고 심지어 힘들어하고 반대로 일정한 흐름이 있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형태의 세상을 보는 모습이다. 사이먼 배런코어는 인류의 진보를 이끈 많은 이들은 사람과 교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론 세상과 사물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알아내지 못하는 일정한 체계를 발견해내면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사이먼 배런코어가 인류 진보에 큰 기여를 한 요소로 보는 인류의 체계화 매커니즘이 자폐인에게서 놀랍도록 많이 보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측면에서 인류의 뇌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지녔으며 어느 한 쪽이 발달하면 상대적으로 어느 한쪽은 약화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는 자폐인을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같은 세상의 숨겨진 것을 발견해내는 사람'으로 보게 한다. 생각의 전환을 주는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사이먼 배런코어가 자폐인과 인류의 진보를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폐인 중 많은 이들이 지닌 체계화 매커니즘은 인류의 진보를 이끈 많은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며 "자폐인을 비롯해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학습"(297쪽)하는 것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제시해줄 때 이들의 사회적 관계 개선은 물론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길까지 열리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체계화 지수(Systemizing Quotient, SQ)와 공감 지수(Empathy Quotient, EQ)를 통해 뇌의 5가지 유형(극단E형, E형, B형, S형, 극단S형)을 제시한 사이먼 배런코어는 공감력이 극대화된 사람도(극단E형) 있고 체계화가 극대화된 사람도(극단S형)도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도(E형, B형, S형) 있다고 말한다.
신경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그는 자폐인을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니라 특정 신경이 발달하고 때로는 극대화되어 그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 도움을 줄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폐인 또는 패턴 시커,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또 폭넓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이들이다. 사이먼 배런코어는 이 책을 통해 자폐인을 새롭게 보게 하며 세상을 보는 방법들도 되짚어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 <패턴 시커>사이먼 배런코어 지음. 강병철 옮김. 경기 파주: 디플롯, 2024. 2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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