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이렇게 해두면 일 년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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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일 년 삼백육십오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날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그 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살까? 그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기 위해,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 그중에 으뜸이 건강을 지키며 사는 일일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공든 탑도 다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부귀와 영화도 다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건강이다. 그런 연유에서 우리 부부는 아주 작은 일에 만족하고 기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해가 거듭 될수록 비워내려 노력 중이다.
철 따라 해야 할 일들, 마음을 놓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자칫 그 시기를 놓칠 수 있어 부지런을 낸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계절을 마중하듯 그때 그때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봄이 오면 진달래 화전을 부치고 쑥이 나오면 쑥버무리 떡을 찌고 아카시아떡도 찐다. 그리고 몸에 좋은 감잎차, 뽕잎차도 만든다.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내 삶의 루틴이 되고 마음 또한 뿌듯하고 기쁘다.
때가 되면 마늘을 사서 껍질 벗겨 빻아 냉동고에 저장해 놓는 일, 가을철 고추가 나오면 고추를 사서 빻아 놓는 일, 일 년을 살아가려면 주부가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손에 들려 보내는 것도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다. 계절에 나오는 먹거리를 챙기는 것은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어제는 시 낭송 수업에 지팡이를 짚고 갔었다. 모두 놀란다. 결석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하는 현장에는 참가 인원이 다섯 명이 되어야 하는 규칙이 있어서다.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어떤 분이 지금 완두콩이 끝물이라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놀라 어떻게 하지, 걱정을 하는데 곁에 있던 선생님이 완두콩을 사러 간다고 하기에 따라 나섰다.
채소 공판장으로 갔다. 그곳은 도매를 하는 곳이라 물건이 많고 값도 시장보다는 조금 저렴하다. 남편 친구 부인이 장사하는 곳을 오랜만에 찾았는데도 잊지 않고 반갑게 대해 준다. 완두콩 사러 왔다고 말하니
▲ 완두콩 껍질을 까고 저장하기 위해 지퍼백에 넣었다. |
ⓒ 이숙자 |
그 말에 이건 무슨 횡재를 한 듯 기분 좋다. 어떻게 하루 사이 그렇게 값이 많이 떨어지나 놀라웠다. 나는 완두콩 네 자루를 사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시장을 자주 올 수 없어 마늘도 사고 토마토, 참외, 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잔뜩 사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같이 간 선생님은 콩만 두 자루 샀는데 나 때문에 수고하는 듯해서 미안했다. 먹을 것을 잔뜩 사니 부자가 된 듯 흐뭇하다.
집에 돌아와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완두콩을 부어 놓고 소파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완두콩을 깐다. 네 자루나 되는 완두콩 양이 꽤 많다. 사실은 남편과 두 사람만 먹으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딸들이 친정이라고 찾아오면 손에 무엇인가 들려 보낼 것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젊은 사람들은 완두콩을 밥 할 때 넣어 먹는 것보다 요리할 때 더 많이 사용하는 걸 보았다.
혼자 일을 하면 능률이 나지 않을 텐데 남편과 함께 하니 오래지 않아 다 깠다. 지퍼팩에 담아 작은 냉동고 한 칸을 가득 채운다. 이런 작은 일들이 기쁘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사람 사는 일이 소소한 일에 삶의 활기와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 이만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저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산다는 것은 순환의 법칙에 따라 때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
작은 일에 나는 만족하며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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