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중국 땅 아니다” 법안 美의회 통과…中 “내정 간섭”

이승호 2024. 6. 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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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한 사원에서 자신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티베트인들이 마련한 기도회에 참석해 한 교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의회가 “티베트는 중국 영토가 아니다”란 주장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달 하순 미국을 방문하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88)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치권 주요 인사들과 만날 가능성도 있어 중국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연말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란 풀이도 나온다.

미 의회전문 매체 더힐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미 하원은 12일(현지시간) ‘티베트-중국 분쟁법’을 찬성 391표, 반대 26표로 가결했다. 법안은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민주·오리건)이 발의해 지난달 상원을 통과한 것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시행된다.

법안의 핵심은 티베트가 예로부터 중국 영토였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티베트 사람·역사·제도에 대한 중국 당국의 허위·왜곡 주장과 정보에 대응하는 데 자금을 지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중국 명칭 시짱(西藏)자치구 이외에 티베트인들이 사는 간쑤(甘肅)·칭하이(靑海)·쓰촨(四川)·윈난(雲南)성 일부도 티베트 지역이란 내용도 담고 있다.

미 국무부는 티베트를 중국 일부로 간주하고 있으나, 이번 법안을 통과시킨 의원들은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점령이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SCMP는 전했다. 의원들은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들이 종교·문화·언어·역사·삶의 방식·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조직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면서 티베트인들이 자결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더힐은 “법안은 미국이 티베트를 중국이 점령한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현지에서 중대한 인권 문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미국 뉴욕시에서 열린 제 39회 이민자 퍼레이드에서 한 여성과 관계자들이 티베트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은 건국 이듬해인 1950년 인민해방군을 투입해 티베트를 강제 병합했다. 1959년엔 티베트 곳곳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봉기가 벌어졌고, 진압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실질적인 국가원수였던 달라이 라마는 이 시기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끌어왔다. 반면 중국은 1965년 티베트 지역을 축소해 31개 성·시·자치구 중의 하나인 시짱 자치구로 편입했다. 중국은 티베트 병합 과정을 ‘평화적 해방’이라고 부르지만, 서방 국가들은 무력에 의한 강제 합병이라고 보고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법안을 통해 미 정부가 중국과 달라이 라마 등 티베트 지도부가 티베트의 미래를 놓고 협상하도록 압박할 명분을 만들었다는 게 미 의회의 생각이다.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공화·텍사스)은 “초당적인 이 법안의 의미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현상 유지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짐 맥거번(민주·매사추세츠) 하원의원은 “법안은 티베트에 관한 미국의 정책을 새롭게 하고 티베트 주민들의 해방을 위한 협상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같은 미 의회의 움직임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류펑위(劉鵬宇)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고, ‘티베트 독립’ 세력이 반중 분리주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선 안 된다”며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7년 미국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가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향후 중국의 반응이 한층 거칠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 말 달라이 라마가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 견제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미 의회와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앞다퉈 만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對)중 관세 인상 등 ‘중국 때리기’를 통해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날 확률도 있다.

로이터 통신은 “달라이 라마는 이전 미국 방문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관리들을 만났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후 아직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았지만 2020년 대선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지난 30년간 달라이 라마와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은 유일한 미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고 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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