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바다, 관음포에 닿다
이순신 장군 해전 현장 탐사 대원들이 15일간 항해를 마친 후 쓴 항해기입니다. 1차 항해는 5월 22일부터 5월 28일까지 동방항로, 2차 항해는 6월 3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방항로로 15일간입니다. <기자말>
[오문수 기자]
▲ 남해대교 아래 정박한 율리안나호 모습 |
ⓒ 오문수 |
지난 2월 말 율리안나호 요트 선장 조원옥씨가 필자에게 권유한 말이다. 조원옥씨는 65세가 되던 2018년 1월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요트를 구입해 여수까지 오는데 6개월이 걸렸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도중 태풍도 몇 개 만나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런 그의 제안에 선뜻 "그러죠 뭐"라고 응답한 나는 해양탐험전문가이자 절친인 동갑내기 친구 이효웅(72)씨한테 "충무공 해전 현장 답사길에 동참하겠느냐?"고 묻자 "좋다!"는 응답이 왔다. 절친한테까지 동의를 받았으니 이제 물러설 길이 없게 됐다.
▲ 항해 중에 뱃머리에서 담소 중인 대원들 모습 |
ⓒ 오문수 |
▲ 율리안나호가 여수 신항을 벗어나 큰바다로 나가자 메인세일을 올리기 위해 작업하고 있는 대원들 모습 |
ⓒ 오문수 |
나는 뻥 뚫린 바다가 좋다. 이미 대한민국 유인도 100여 개를 돌아보았다. 항해술은 빵점인데도 나를 태우고 갈 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를 싣고 갈 배는 태평양을 건너며 태풍도 몇 개 견뎌낸 요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해술도 걱정이 없다. 이효웅씨가 대장으로 선출되어 항해를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효웅씨는 학교 옥상에서 3년 동안 4m짜리 배를 제작해 울릉도부터 독도까지 8천킬로미터를 혼자서 항해한 경력이 있다. 팀에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지도제작 전문가 안동립, 한국해양대학교 김낙현 교수, 119대장 박석룡이 합세했다. 면면을 살펴보니 레전드들이다.
일행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 현장을 두 개로 나눴다. 여수에서 부산포해전 현장까지의 동방 항로와 여수에서 명량해전 현장까지의 서방 항로다. 5월 22일 여수를 출발해 두 개 항로를 탐사하고 돌아오면 약 1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다. 팀원들이 마음을 다잡고 출발 준비를 마쳤을 즈음에 조원옥 선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충무공길 답사를 떠나기 전에 아산 현충사와 남원 만인의총을 방문해 이순신 장군 묘지 앞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오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 때문에 전라도와 충청도를 점령하지 못했다. 두 지역 점령을 호시탐탐 노리던 왜수군은 칠천량해전(1597년 7월 16일)에서 원균이 이끌던 조선수군을 궤멸시킨 후 전라도 초입에 있는 남원성을 함락시켰다. '만인의 총'은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이 거의 만명에 달했기 붙여진 이름이다.
▲ 율리안나호 조원옥 선장이 아산 현충사에서 고유문을 낭독하고 있다 |
ⓒ 조원옥 |
▲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관음포 앞바다에서 무릎 꿇고 고유문을 낭독하는 조원옥 선장 모습 |
ⓒ 오문수 |
"장군님의 묘역에서 장군님의 후예 조원옥은 감히 한 잔의 술을 올리고 엎드려 말씀 올립니다. 임진년 일본의 침략으로 태풍 앞 촛불 같은 조선 강토의 백성을 구하신 장군님의 위업을 기리며 영원토록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아룁니다.
▲ 율리안나호가 출항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 오문수 |
조원옥씨가 이순신 장군 묘역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 태평양을 횡단할 때 매일 매일 지척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럴때면 사육신의 '임사절명시(臨死絶命詩)'를 암송하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의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기 때문이다.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이순신 장군의 동방 원정 발자취를 따라 나서다
일행은 요트에서 숙식하며 모든 항로를 답사하기로 했다. 5월 21일 두꺼운 겨울철 침낭을 둘러멘 일행이 여수 이순신요트마리나에 모였다. 총무인 필자는 일행과 함께 인근 식자재 마트에 들러 쇼핑을 시작했다.
압력밥솥, 퐁퐁, 수세미, 쌀, 고기집게, 대형접시, 채소, 과일, 고추, 당근, 양파, 바나나, 토마토, 감자, 구운계란, 초장, 고추장, 된장, 간장, 햇반, 라면, 김치 한 상자, 삼겹살, 참치통조림, 식수, 화장지, 커피세트. 메모지에 적힌 대로 물건을 카트에 싣고 나니 승용차 트렁크가 부족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전투 현장에서 수중고혼이 된 수군들을 위한 고유제에 쓸 막걸리다. 5월 22일 오전 9시 15분, 여수 웅천 이순신요트마리나를 출발한 배가 11시경에 이순신광장에 도착했다.
▲ 지난 5월 22일, 충무공 이순신 해전 현장 탐사대원들을 환송하는 여수여해재단 관계자들이 여수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기념촬영했다. |
ⓒ 오문수 |
▲ 이순신 장군 해전 항로 탐사 출정식을 보도하고 있는 KBS 뉴스(5월 22일) |
ⓒ 오문수 |
12시 20분, 이순신 광장을 떠난 일행이 종화동을 벗어나자 여수국가산단으로 오가는 유조선과 화물선들이 즐비하다. 율리안나호가 대형선박 사이로 빠져나가자 조원옥 선장이 "풍상! 풍상 유지!"를 외치며 메인세일(Main sail)을 올리자 배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풍상'이란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선수를 돌리는 것으로 돛을 올리거나 내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메인 세일을 올려 5.6노트로 달린 율리안나호는 오후 2시 40분경에 광양제철 인근 바다를 지나 한반도 역사의 분수령이 된 관음포 앞에 도착했다.
관음포는 1598년 11월 19일 임진 정유 두 왜란에 종지부를 찍은 현장이자 이순신장군이 전사한 바다이다. 일행은 조원옥선장이 올리는 고유문을 들으며 남해대교 인근에 정박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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