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을 어찌할꼬
[김성호 기자]
어느 잡지로부터 재난 뒤 남겨진 동물의 삶을 다룬 글을 청탁받은 일이 있다. 온갖 자연현상으로 받는 타격을 뜻하는 재난을 인간사회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동물의 현실을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 그리하여 나는 여러 각도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한 편의 글을 지어 잡지에 보내었던 것이다.
한 편 글을 짓기까지 읽은 책이 여럿이었다. 그 중에는 사진집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 또 후쿠시마 일대 축산농가와 그들의 소가 겪은 비극을 다룬 르포 <소와 흙>이 있었으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곳을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만들어가는 이들을 다룬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도 있었다. 특히 앞의 두 편은 후쿠시마 일대 동물들의 삶에 집중한 저술로써, 재난 가운데 인간을 제한 동물들이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짓밟히는지를 생생히 일깨운다.
▲ 생츄어리 포스터 |
ⓒ 시네마달 |
의도치 않은 덫,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가던지
수로, 특히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만들어진 깊은 수로는 소와 돼지, 개와 사슴, 고양이 등 온갖 동물에게 죽음의 덫이 되고는 한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로엔 동물이 먹이 삼을 수 있는 무엇이 자라기 어렵고, 그 높이 또한 낮게는 수십 센티에서 높게는 수 미터나 되어 사족보행하는 동물로선 극복할 수 없는 탓이다.
수로에 갇혀 죽은 수많은 가축 사체가 이룬 더미를 바라보며 나는 그 수로가 평소엔 또 얼마만큼 많은 짐승들을 끌어들여 죽여왔을까를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후쿠시마가 아닌 한국 어느 지역의 농수로들과 그곳에 빠져 죽은 생명들을 살피지 못하였으니, 인간의 사고란 대체 얼마만큼 비좁은 것인지!
▲ 생츄어리 스틸컷 |
ⓒ 시네마달 |
인간이 정복한 세계에서 고통받는 동물들
<생츄어리>가 담은 다큐의 초입은 얼마나 많은 것을 내보이는가. 하나는 수로가 죽인 무고한 생명들, 그 생명들이 마주했을 고통이다. 어떠한 희망도 찾아낼 수 없는 수로라는 완전한 함정 가운데 이들이 발악했을 순간들을 떠올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센터 직원들의 마음 씀이다. 죽은 고라니 사체들을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놓는 이들의 동작이 어찌나 섬세하던지 나는 땡볕 아래 수로를 헤매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한 것인지를 단박에 이해할 수가 있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저 북방 어느 언덕에서 사체를 바닥에 질질 끌고 와선 툭하고 바닥에 던져놓던 나와 내 동료들의 한 때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는 짐승 사체를 살포시 내려두려 하였고, 꺾인 목이며 다리를 제대로 펴주었던 것이다. 빨리빨리 못하느냐고 호통이 날아들고, 나 또한 그의 둔한 몸놀림을 답답하게 여겼던 순간이 있었다. 선한 이들이란 저의 불편보다도 이미 죽어버린, 그러나 한때는 살아 있었을 무엇의 존엄을 더 중하게 여기는 법이라고, 나는 십 수 년이 지나 만난 다큐 속 장면에 고개를 떨구고 만다.
▲ 생츄어리 스틸컷 |
ⓒ 시네마달 |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는 크게 세 개 집단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하나는 야생동물을 구조해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려는 이들, 야생동물구조센터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수의사와 사육사들이다. 마지막은 곰 농장 등을 사들여 그 안의 동물을 구조하고 안락한 삶을 주려 하는 활동가들이다. 이들이 각자가 선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동물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생츄어리>가 붙잡는다.
전작 <동물, 원>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그들을 돌보는 동물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쁘게 담아냈던 왕민철이다. <생츄어리>는 그가 5년 만에 발표한 후속작이자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편으로, 그 시작부터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임을 내보인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어디에나 깔려 있는 죽음과 그 불가피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영화인 것이다.
▲ 생츄어리 스틸컷 |
ⓒ 시네마달 |
산만하지만 무시해선 안 되는 이야기
야생동물과 동물원의 전시동물들, 또 곰 농장에서 구조된 동물의 서로 다른 양태가 안락사의 선택을 두고 그들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딜레마로 연결되는 과정이 아마도 영화가 집중하려 한 바일 테다. 시선이 나뉘어져 있는 만큼 이야기가 다소 중구난방으로 흘러가고, 너무 많은 동물이 등장하는 탓에 서사가 산만하게 흩어진단 점은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이다. 영화가 집중하려 한 지점이 뾰족이 드러나지 않아 관객은 저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지점에 오래 머물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전개는 그만큼 감독이 영화 속 여러 고민의 지점을 버리지 못했단 걸 보여주기도 한다. 안락사를 둘러싼 고민과 인간이 빚은 야생동물들의 비극, 그 안에서도 발견되는 어떤 아름다움이며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 지탱하고 있는 삶의 자세 따위가 영화 곳곳에서 불쑥불쑥 비어져 나온다.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이 결코 잘 만들어졌다 할 수 없음에도 가치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절하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영화가 던지는 모든 질문이 각기 충분한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로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씨네만세' 두 편을 할애해 <생츄어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생츄어리란 대체 무엇인가를, 이 영화가 던지는 모든 질문 앞에 관객이 어째서 숙연해질 밖에 없는가를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농수로에 빠져 죽어가는 수많은 동물들 앞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제 책임이 없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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