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무엇을 위한 지구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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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남경필·정두언·구상찬·권영진·김용태·홍일표 등 당시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6명이 들고나온 정당 체제 혁신안은 지금도 의미가 적잖다.
이들은 혁신안에서 ▲중앙당 폐지 ▲당대표직 폐지 ▲공천제 폐지 ▲완전 국민경선 도입 ▲강제적 당론 폐지 등을 주장했다.
전형적인 유럽식 내각제의 권력구조와 정당 체제는 대부분의 각론에서 정 반대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으며 공천권과 중앙당의 기세에 휘둘리는 우리 정당 체제는 굳이 따지자면 이쪽에 훨씬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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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남경필·정두언·구상찬·권영진·김용태·홍일표 등 당시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6명이 들고나온 정당 체제 혁신안은 지금도 의미가 적잖다. 이들은 혁신안에서 ▲중앙당 폐지 ▲당대표직 폐지 ▲공천제 폐지 ▲완전 국민경선 도입 ▲강제적 당론 폐지 등을 주장했다. 요약하면 미국식 원내정당 모델을 도입해보자는 것이고 더 나아가면 제대로 된 대통령제를 운용해보자는 뜻이 내포돼있다.
박근혜 비대위의 시퍼런 서슬에 맥을 못 췄고 메아리는 미미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그러면서도 정돈된 제안이었음은 분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시절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 및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통일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안까지 합치면 대통령제의 원형에 더 가까워지는데 이 또한 무산됐다. 이후로 제기된 목소리 중 더러는 귀 기울여봄 직했으나 대개 파편적이고 추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권력구조와 정당 체제는 엉뚱하게 재조합된 유사품 또는 불량품에 가깝다. 전형적인 대통령제에서는 원내 의원집단에 상위하는 중앙당 따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당 대표라고 하면 의원들을 대표하는 원내대표뿐이며 공천이라는 개념 또한 없다. 그러므로 정당의 결속은 느슨해지고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높아서 여당과 야당 내의 반대투표 집단, 즉 여야의 교집합군이 형성되기 쉽다. 바로 이 지점이, 절대로 안 되는 것도 거저 되는 것도 없도록 만드는 타협의 공간이다.
전형적인 유럽식 내각제의 권력구조와 정당 체제는 대부분의 각론에서 정 반대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으며 공천권과 중앙당의 기세에 휘둘리는 우리 정당 체제는 굳이 따지자면 이쪽에 훨씬 더 가깝다. 제각각 나름대로 그러해야 특장점이 발휘되게끔 만들어졌으니 그 자체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할 건 아니지만 무질서하게 뒤섞이면 오작동할 위험이 매우 크다는 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 제도는 불행하게도 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역할이 존재할 뿐인, 내각제의 작동 원리가 함부로 얽히고설킨 우리만의 이상한 제도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앞서 상기시킨 혁신이나 개헌의 제안은 바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보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5년이라는 이도 저도 아닌 길이의 임기에 사로잡혀 있고 이 중 1~2년은 어차피 힘도 못 쓰는 현실의 반복. 가뜩이나 특권이 어마어마해 직업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의원직을 유지하는 게 지상과제인데 이를 위한 공천의 공식은 정해져 있고 입바른 소리나 타협은 여기에 도움이 안 되니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언행과 무도하고 퇴행적이며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에 거리낌이 없다.
이에 따라 시민과 유권자에 대한 정치의 배신은 구조화하고 있으며 시스템이 아예 무용해지는 정국의 교착(Dead-Lock)은 만성화한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오징어 게임’ 수준으로 전락한 정치의 난맥상은 이처럼 일그러진 제도가 낳은 촌극의 동시상영이자 연속상영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별안간 끄집어낸 지구당 부활론은 이런 점에서 불길하고 안타깝다. 지구당이 중앙당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움켜쥔 당 대표(때에 따라서는 대통령) 중심의 일극 정치, 이론을 억누르는 단일대오 정치의 부산물이거나 불쏘시개여서 개악이라는 점에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구당을 중심으로 횡행했던 구태와 금권선거의 망령이 여전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은 제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매우 빈약하다는 방증이거나 꿍꿍이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김효진 전략기획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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