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 '인사이드 아웃'의 처방전

이진민 2024. 6.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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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인사이드 아웃2>

[이진민 기자]

인간의 성장은 탈피인가, 진화인가. 우리는 과거의 나를 벗어던지며 자랐던 걸까, 아니면 몸집을 키워가며 어른이 된 걸까.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이미 흘러간 시간은 현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우리는 내면에 존재한다. 혹시 그 아이를 두고 어찌할 줄 몰라서 외면한 적 없는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장악한 단어는 바로 이 '내면의 아이'였다.

연애 프로그램 <연애남매> 속 어느 출연진이 타 출연진에게 "당신 안에 울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고 발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를 두고 출연진의 성품을 깎아내리는 시도와 함께 '내면의 아이가 있다는 건 성숙하지 않다는 증거'라는 비난이 따랐다. 출연진의 발언을 옹호하든, 질책하든 모두 한 가지 의견에 동의했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 안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아니, 없애는 게 정답일까. <인사이드 아웃 2>가 뜻밖의 처방을 내렸다. 
 
 <인사이드 아웃2> 메인 포스터
ⓒ Disney/Pixar
 

미래는 불안해, 사춘기의 감각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라일리'에 맞춰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 불안해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하는 '불안',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부럽', 자꾸 얼굴을 숨기는 '당황', 언제나 시큰둥한 '따분'이다. 라일리는 중학교 하키팀에서 대활약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새롭게 등장한 감정 캐릭터 '불안'
ⓒ Disney/Pixar
 
하지만 친구들이 다른 고등학교에 이미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일리는 실망하게 되고, 함께 도착한 하키 캠프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핵심 감정은 '불안'이다. 뭐든 잘될 거라며 대책 없던 '기쁨'과 달리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미래를 대비하려고 한다.

그 덕에 라일리는 잠을 설치고 새벽 연습에 나가며 말 한마디를 할 때도 머리를 굴린다. 불안감이 증가할수록 자존감이 깎이게 되고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나는 최악이야', '나는 너무 부족해'라는 말이 울려 퍼진다. 쉴 틈 없이 돌아가던 라일리의 하루는 마침내 터지게 되고 결국 감정들은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라일리가 잘되라고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다투던 불안과 기쁨은 마침내 라일리의 감정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라일리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둔다. 최고의 라일리를 만들겠다는 감정들이 중요한 순간에 한발 물러선 이유. 최선을 다하면 그것만으로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정들은 이제 라일리의 감정을 조정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도록 응원한다.

당신 안에 어린아이를 안아주세요

극 중 핵심적인 감정인 불안과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정반대 모습을 보인다. 불안은 어떤 상황이든 걱정하며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여 일일이 대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불안에게 준비할 수 없는 미래란 없다. 뭐든지 예상하고, 준비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라일리를 채찍질하며 각성 상태에 빠지게 한다.
 
 기억의 구슬이 쌓여 만든 '자아'
ⓒ Disney/Pixar
 
반면, 기쁨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며 불행한 순간을 삭제한다. 라일리가 실패하고 실수한 순간을 지우고, 상처받거나 속상한 감정을 없애며 그의 기억 속에 행복만 재생한다. 하지만 불안과 기쁨은 저명한 삶의 진리에 부딪힌다. 인생은 결코 예측할 수 없으며, 행복만 쌓인 삶은 단단하지 않다는 것. 결국 불안이 만든 라일리의 '자아'와 기쁨이 만든 '자아' 모두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거대한 불행을 만나 산산조각 난다.

그 순간, 어떠한 감정 캐릭터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라일리는 희로애락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스치는 기억에는 양가감정이 얽혀있다. 열심히 했지만, 실패했던 경험. 선의가 최악으로 이어졌던 순간. 온전히 혼자서 감정을 소화한 라일리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다. 그건 기쁨이 만든 자아처럼 나를 사랑하면서, 불안이 만든 자아처럼 나를 미워하는 뫼비우스의 자아다.

인간의 자아는 다층적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며 싫어할 수 있고, 뿌듯해하며 부끄러워할 수 있고, 잘 되길 바라면서 망하길 소원할 수 있다. 자아의 형태는 단단하게 굳어진 모습보다 비 온 뒤 땅처럼 질퍽거리면서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진흙에 가깝다. 라일리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딱딱했던 자아가 이제는 홀로 모양을 바꿔가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감정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들은 한 명씩 다가가 자아를 안았다. 겹겹이 자아를 안은 감정들은 또 다른 감정을 느낀다. 기쁨은 눈물을 흘리고, 불안은 안도하며, 슬픔은 평온하다. 이렇듯 사람은 연약한 나를 포용할 때 성장한다. 강해지라고 다그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여린 속살이 덧나지 않게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라게 되고 자아는 움직이며 살아난다.

<인사이드 아웃 1>이 모든 감정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면, 2편은 모든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극 중 라일리가 성장한 건 불안정한 과거의 자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나는 완벽할 수 없다는 비대칭성을 포용하자 라일리는 비로소 꼿꼿이 걸을 수 있었다.

우리 내면에는 여러 어린아이가 산다. 슬픔과 곤란에 빠진 그때의 우리는 얼어붙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른이 된 우리는 내면의 아이를 포용할 수 있으며 라일리처럼, 어쩌면 더 잘 안아줄 수 있다. 어떠한 시절의 '나'라도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당신께 영화 크레디트를 바친다.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우린 너희가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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