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화유산 탐방에 열정을 쏟는 이유

박배민 2024. 6.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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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민 기자]

재미

나에게 문화유산 탐방은 그 자체로 흥이 나는 일이다. 고요한 산 속의 사찰, 뉘엿뉘엿 해질녘의 궁궐, 수풀과 하나된 듯한 오래된 성까지,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시간을 들여 문화유산에 찾아가 내 눈으로 확인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며 책으로 공부한 지식을 현장과 맞춰보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놀이다. 궁이나 사찰 같은 오래된 건축물에 발을 들여놓을 때면, 내가 보는 광경이 마치 영화 속 오버랩 장면처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한다.
 
 세조 광릉에서 정자각에서의 필자 모습
ⓒ 박배민
문화유산은 만날 때마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미처 눈길이 닿지 못 했던 세부적인 장식을 발견하거나,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를 새롭게 느끼곤 한다.
문화유산과 마주하고 있으면, 유산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의 흐름 속에 스겨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백년 고목의 잎사귀, 바람과 비를 머금은 목재의 질감,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을 밟으며, 옛 사람들의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화성 성곽 길을 걷고 있는 필자의 뒷모습
ⓒ 박배민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
필자는 식사, 일, 여행, 게임 등 가능하면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한다. 문화유산 탐방도 혼자서 자주 간다. 주로 공부 목적으로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혼자만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혼자 다니면 편하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화유산 탐방만큼은 혼자 가서는 그다지 흥이 오르지 않는다.
 
 수원 문화재야행 참가 당시 참여자 단체 사진
ⓒ 박배민
문화유산 탐방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가장 신난다. 함께 속도를 맞춰 걷고, 서로의 시각에서 본 것과 느낀 감정을 나누면 탐방이 한결 넉넉해진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고, 그 차이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관점을 배우기도 한다.
눈앞에 펼쳐진 역사의 흔적을 보며 경탄할 때,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의 교감도 깊어진다. 각자의 마음이 맞물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다.
  
 필자가 기획, 총괄했던 ‘도봉 문화재 책제작단’ 발대식 모습
ⓒ 박배민
 
탐방 모임을 진행하면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다. 나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우리가 만날 문화유산에 관한 자료를 찾고, 현장 답사를 하며, 참여자가 쉽게 이해하고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도 성장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간다.
 
 덕수궁 석조전 테라스에서 준명당을 바라보는 참여자와 필자
ⓒ 박배민
 
내 지식을 나누는 기쁨

탐방을 갈 때마다 참여자가 해당 문화유산을 흥미롭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여러 이야기를 준비한다. 내가 준비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그들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마치 어두운 방에 작은 불빛을 켜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참여자의 눈빛이 반짝일 때, 표정이 환해질 때,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다. 각자의 시각에서 새롭게 느끼고 감동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나만의 감동을 느낀다. 그 순간, 우리는 역사의 한 장면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 오른다.
 
 창덕궁 탐방 당시 필자가 제작한 학습지의 일부
ⓒ 박배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유산'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한곳에 모여, 서로 준비한 지식을 전하는 시간, 머리를 맞대고 모르는 내용을 찾아가는 경험,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함께 느끼는 감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이런 순간들은 켜켜이 쌓여 내 인생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나를 더욱더 문화유산 탐방에 열정을 쏟게 만든다.

문화유산을 알린다는 자부심

나는 문화유산 업계에서 일을 하거나 관련 학문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저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가끔은 나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몽촌토성의 백제 유적 발굴지를 살펴보는 모임원
ⓒ 박배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문화재를 멀게 느끼거나, 그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문화유산 탐방 모임을 소소하게 운영하며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유산과 사람들의 접점을 마련하고 있다. 모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명이라도 더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길상사 탐방 후 단체 사진
ⓒ 박배민
 
오래된 도자기의 은은함, 옛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민화, 멀리 울려퍼졌을 종까지. 문화유산을 통해 과거와 지금의 우리가 만나는 순간, 나는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이 숨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들이 놀라워 하고 감동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도 벅차오른다.

혼자든, 여럿이든 매번 탐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내 안에 또 다른 열정의 불씨가 타오른다.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문화유산를 알리는 일을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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