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시선] 라루사의 몰락, 베이커의 성공 그리고 김경문의 귀환
차승윤 2024. 6. 13. 08:42
김경문(66) 한화 이글스 감독은 지난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6-1로 승리, 개인 통산 900승 고지에 올랐다. 김 감독은 21년 차 '최고령' 지도자다. 현장 복귀엔 우려가 더 많았다. 노감독 특유의 아집을 우려한 팬들이 많았다. 복귀 후 일주일. 우려했던 '아집'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성적도 12일 기준 5승 1무 2패로 준수하다.
야구에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데이터나 젊음은 유용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메이저리그(MLB)도 마찬가지다. 현대 야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토니 라루사 감독은 지난 2021년(당시 77세)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했다. 복귀 전까지 라루사는 1979년부터 2011년까지 35시즌 통산 2728승을 거뒀다. 월드시리즈(WS)에 6번 올라 3번 우승을 거뒀고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보다 1년 전 또 한 명의 노장, 더스티 베이커 감독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당시 70세)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세 차례 우승으로 '짝수 해 신화'를 썼던 브루스 보치 감독도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에 복귀, 바로 WS 정상에 섰다.
현대 야구 최고의 감독이라던 라루사는 2021년 디비전 시리즈 탈락으로 가을야구를 마쳤다. 공교롭게도 그를 꺾은 게 베이커였다. 라루사가 우승의 상징이었다면 베이커는 무관의 상징이었다. 1993년 첫 지휘봉을 잡았던 베이커는 22시즌 동안 WS에 세 번 올랐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랬던 베이커는 2022년 마침내 WS 정상에 올라 설움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베이커 감독이 성공한 건 데이터 때문이 아니다. 베이커 감독 역시 전형적인 '올드 스쿨'이다. 징크스 때문에 수십 년 된 내복을 입는 '옛날 사람'이기도 했다. 세이버 메트릭스도 싫어했다. 베이커는 데이터에 친숙한 선수들에게 "너희들, 그래봐야 결국 '집어치우고 안타나 쳐보자'고 할 거야. 빌어먹을 타구 속도 대신 '안타 발사'는 어때?"라고 할 정도였다.
올드 스쿨이 '꼰대'를 의미하진 않는다. 함께 했던 선수들은 베이커를 두고 "사랑받는 능력이 있다"고 떠올렸다. 선수들과 농담과 장난을 즐겨하고, 스스럼없이 선물도 주고받았다. 투수 숀 켈리는 그를 "광기 그 자체"라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겠다. 베이커"라고 떠올렸다. 조이 보토 역시 "베이커를 사랑한다. 그게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했다.
라루사 감독은 반대였다. 2021년 초 신인왕 후보로 활약하던 예르민 메르세데스가 불문율을 깨고 야수 상대 홈런을 쳤다며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당장 그해 가을야구는 갔지만, 중남미 어린 선수들 중심으로 구성된 선수단 분위기는 금이 갔다. 약 4년간 전면 리빌딩을 단행하며 우승을 꿈꿨던 화이트삭스는 결국 이듬해 몰락했다. 2020년과 2021년 두 번의 가을야구를 끝으로 암흑기에 빠졌고, 라루사의 복귀도 실패로 마무리됐다.
김경문 감독의 캐릭터는 베이커와 맞닿아 있다. 준우승만 3회 기록한 김 감독 역시 취임식에서 "2등이라는 게 나 자신에겐 아픔이었다"고 떠올렸다. 그의 성공 역시 '올드 스쿨' 여부에 달리지 않았다. 베테랑 선수는 물론 MZ세대로 가득 찬 한화 선수단과 얼마나 소통하느냐가 핵심이다.
올해 김경문 감독은 '호랑이'가 아니다. 경기 중 어린 선수들의 실수에 질책 대신 격려를 남기고, 차분히 이야기를 전하면서 팬들의 시선을 끈다. 2022년 LA 다저스 연수가 김경문 감독을 바꿨다. 김 감독은 "예전에는 선수들과 소통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감독이 이기고 싶다고 다 이기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과 소통도 필요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아들 같은 선수들에게 형으로서 잘해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경험 많은 선수들이 아니니 다들 날 어려워하더라. 그래서 먼저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감독들이 그렇게 많이 한다는 걸 많이 배웠다"고 했다. 라루사가 아닌 베이커, 6년 만에 돌아온 '달 감독'의 목표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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