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빛깔 바다와 태초의 자연… ‘낙원 속 낙원’
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에서 남서쪽으로 약 5㎞ 떨어진 섬이 티니안이다. 면적 약 100㎢에 인구 3000여 명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기에 그만이다. 그렇다고 낭만적인 해변 휴양지는 아니다. 바닷가의 전망 좋은 호텔도,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아직까지 인공미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의 참혹한 흔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섬 남부는 천혜의 힐링 여행지이고 북부는 ‘다크 투어리즘’의 최적지이다.
티니안은 사이판과 마찬가지로 스페인·독일·일본 통치를 거쳐 2차 세계대전 후 유엔 신탁통치령이 됐다. 이후 1981년 주민투표를 통해 미국 자치령이 되기로 결정했으며, 1986년 11월 정식으로 마리아나제도 자치령 일원이 됐다.
대체로 평평한 지형의 티니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일직선 도로로 구획돼 있다. 섬 중앙을 세로로 관통하는 14.5㎞ 길이의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8번가, 타임스퀘어, 월스트리트, 센트럴파크까지 뉴욕 맨해튼의 지명을 그대로 옮겨왔다.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깊게 남은 섬이니 자연스럽게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가 연상되는데, 섬을 이렇게 구획할 당시에는 그 프로젝트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공항이 있는 섬의 남서쪽 지역에는 섬 주민 상당수가 몰려 사는 산호세 마을, 시 청사, 경찰서, 병원, 교회, 은행 등 주요 시설들이 모여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차모로족 유적 등 볼거리·즐길 거리도 제법 있다.
산호세 중심부에 섬에서 단연 돋보이는 대궐 같은 집 ‘타가하우스’가 있다. 약 450년 전에 살았던 차모로족 족장의 저택이다. 라테스톤(돌기둥) 위에 주발 모양 돌을 올려놓았다. 큰 집은 두 줄에 여섯 개씩 모두 12개의 돌기둥으로 이뤄졌다. 그 위에 나무를 깔고 지붕을 올려 집을 짓고 사다리로 오르내리며 살았다. 가족마다 주방, 침실, 카누 보관 등의 용도로 이런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었다.
전통주택에 사용된 거대한 돌기둥은 대부분 쓰러져 있다. 주발형 바윗덩어리 한곳이 움푹 패여 있다. 타가 족장이 사랑하는 딸이 죽자 가까이 두기 위해 그곳에 딸의 시신을 넣은 곳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1.2㎞ 떨어진 타가해변 암반에 돌 채취 흔적이 남아 있다. 최고 높이 4.6m에 이르는 큰 돌기둥을 어떻게 옮겼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타가해변은 차모로족 족장이었던 타가와 그의 가족만 출입할 수 있었던 전용해변이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수직의 바위 절벽 아래에 자그마한 모래 해변이 자리한다. 투명한 바닷물은 서서히 깊어지며 푸르름을 더해 간다. 하루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는 에메랄드빛 바다다. 그 바다에서 동네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섬 북부로 가면 노스필드가 있다. 이곳에 길이 2600m짜리 활주로가 네 개나 있다. 현재도 미군 등이 훈련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비행장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향해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을 탑재한 B-29가 출격한 곳으로 유명하다. 활주로 북쪽에는 길이 5m, 폭 3m, 깊이 2.5m 규모의 원자폭탄 적하장 터가 있다.
일본 해군사령부 터는 인근 정글 속에 2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돼 있다. 폭탄을 맞아 천장과 벽에 구멍이 뚫리기는 했지만 거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폭격을 맞아 폭발한 연료저장고, 탄약고, 관제실, 군사행정실, 발전소 등이 뼈대를 유지한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 서쪽 작은 해안인 출루 비치는 1944년 미군 해병대가 상륙한 곳이어서 랜딩 비치라고도 한다. 이곳은 해안가 현무암 지대가 많아 상륙에 적합지 않아 일제도 ‘설마 이곳에 상륙하겠냐’면서 방어하지 않았다. 미군은 일본군을 교란하기 위해 남부 해안 타촉냐 비치에 상륙하는 척하며 배 몇 척 보내고는 출루 비치의 돌투성이 위에 판자를 깔고 평평하게 만든 뒤 100여척의 상륙선으로 기습 작전에 성공했다고 한다.
공군기지 동쪽 해안은 산호초로 이뤄진 바위투성이에 티니안 최고의 볼거리 ‘블로홀’이 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구멍 사이로 물보라가 10m 가까이 솟아오르면서 역동적인 풍광을 펼쳐놓는 천연분수다.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이곳에서 도주하면서 북마리아나제도에 있던 한국인 징용공 1만 여명을 학살하거나 강제 자살시켰다. 당시 티니안에서 학살당한 한국인 노동자만 5000여명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그들을 기리는 ‘평화기원한국인위령비’등이 세워져 있다.
사이판 공항에서 경비행기로 10분
작고 매운 고추 ‘도니살리’ 특산품
티니안의 평균 기온 27~29도로 연중 거의 변화가 없어 해양스포츠 천국이다.
사이판에서 티니안으로 가는 배편은 없다. 스타 마리아나스 에어는 사이판에서 티니안으로 향하는 경비행기를 매일 9편 운항한다. 비행기 탑승에 앞서 균형을 위해 개인의 몸무게를 측정한 뒤 좌석이 배정된다. 10분 남짓이면 티니안에 닿는다.
티니안 개별 여행은 쉽지 않다. 마이리얼트립이 당일 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오전 8시 10분 사이판 주요 호텔에서 여행객을 픽업한 뒤 오전 9시 경비행기 탑승, 9시 15분 티니안 도착, 9시 30분~11시 30분 티니안 핵심 명소 투어, 점심 도시락 식사 후 낮 12시 30분 타가비치로 이동 및 타촉냐 비치 스노클링 즐기기(장비 제공), 오후 3시 30분 티니안 공항 이동, 오후 4시 사이판으로 이동 및 호텔 귀환 순으로 진행된다.
티니안 특산품으로 강렬하게 매운 고추 ‘도니살리’가 있다. 살리라는 검은 새가 열매를 먹은 뒤 정글에 배설한 씨에서 난 자연산이다. 생산량이 적어 1파운드(약 0.454㎏)에 25달러 정도로 비싼 편이다. 매년 2월 도니살리를 주제로 한 ‘티니안 핫 페퍼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티니안(북마리아나제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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