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한 권의 책’의 위대함과 위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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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경계하라"(호모 우니우스 리브리 티메오)는 유명한 라틴어 경구가 있다.
근대 세계의 도래와 함께 학문과 교육이 발전하고 새로운 지식이 사회를 바꿔나가면서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은 독단적인 지식을 고수하고 강요하는 사람을 비꼬는 용어가 됐다.
시대마다 '한 권의 책의 사람'이란 말의 맥락과 의미에 변화가 생겼듯 이 표현이 현대인에게 새롭게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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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경계하라”(호모 우니우스 리브리 티메오)는 유명한 라틴어 경구가 있다. 이 표현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3세기 저명 신학자이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에서 나왔다고들 흔히 말한다. 원래 이 말은 논쟁할 때 하나의 책에 통달한 사람의 지식이나 논리를 얕보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구에 놀랄 만한 변화가 약 500년 후 일어났다. 18세기 영국에서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는 4개의 단어로 구성된 라틴어 문장에서 ‘한 권의 책의 사람’(호모 우니우스 리브리)만 쏙 빼냈다. 여기서 한 권의 책은 성경이다. 웨슬리가 경건과 학문에 힘쓰는 신성회를 지도하기 시작한 다음 해에 쓴 편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성경 외에 다른 책을 공부하지 않는, 즉 ‘한 권의 책’의 사람이 됐다.” 이후 한 권의 책이라는 표현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에게 크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듣기 좋아도 말 자체에 속으면 안 된다. 웨슬리가 사적인 편지나 설교 등에서 자신을 한 권의 책의 사람이라 불렀어도 그는 여전히 다른 책도 열심히 읽고 진지하게 연구했다. 그가 세운 학교 커리큘럼에는 성경교육만이 아니라 기초적 교양과 자연과학까지 들어 있었다.
근대 세계의 도래와 함께 학문과 교육이 발전하고 새로운 지식이 사회를 바꿔나가면서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은 독단적인 지식을 고수하고 강요하는 사람을 비꼬는 용어가 됐다. 아퀴나스나 웨슬리는 상상도 못 할 세상, 즉 한 권의 책만 읽는다는 게 무교양과 편협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도래한 셈이다. 실제 한 권의 책만 보다가는 다른 중요한 지식과 관점을 놓치기 쉽다.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배경과 생각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시대마다 ‘한 권의 책의 사람’이란 말의 맥락과 의미에 변화가 생겼듯 이 표현이 현대인에게 새롭게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특히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가 “성경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사용될지 걱정이다.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이를 읽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책 하나만 읽다가 독단에 빠질 한계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 한 권의 책의 사람이 되는 것과 다른 목소리에 귀 막거나 현대 학문을 무시하고 타인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럴수록 명심할 것은 ‘한 권의 책’으로서 성경이 ‘두 권의 책’의 하나님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로 된 ‘거룩한 책’과 더불어 피조물의 세계인 ‘자연의 책’으로 자신을 계시한다. 두 책을 함께 읽어내야 하나님과 삼라만상을 더 온전히 알게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한 책의 사람은 성경만 읽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의 책도 존중하며 그 책이 주는 풍성하고 아름답고 때론 비밀스러운 지식에 열려 있어 감사할 줄 아는 이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거룩한 책과 자연의 책을 완전히 조화롭게 읽을 방법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끌어낸 세계관이나 신념, 전통과 신학만으로 다른 지식의 영역을 배제하고 전문가의 공헌을 폄훼하거나 타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한다면 그 한 권의 책을 오독한 셈이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는 맥락에서 한 권의 책의 의미와 중요성을 찾는 이들이다. 두 책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갖고 위대한 한 권의 책에서 얻은 지혜를 더 넓은 맥락에서 적용하고 새로운 지식이 줄 수 있는 불편함에도 경이로워할 수 있는 겸손한 자가 진정한 한 권의 책의 사람이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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