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심판 공격과 민주주의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세계의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는지를 분석했다. 4장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엔 ‘심판 매수’ 파트가 있다. 여기서 심판은 법원과 검찰, 국세청, 규제 기관 등을 가리킨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사로 사법부를 채우고 법 집행기관의 힘을 무력화함으로써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권력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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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영 유죄 선고에 민주당 반발
‘판사 선출’ ‘검사 탄핵’ 등 주장
사법부 흔들리면 민주주의 위태
」
이는 사법부 장악이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사법부의 독립성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는 의미다. 그런데 사법부에 자기 편을 심고 입맛대로 부리려는 이가 독재권력뿐일까. 의회권력이라고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최근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들끓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심판’ 성토다. 민주당의 국회 사령탑인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씨 판결 관련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심판도 선출해야…”라고 썼다. 여기서 심판은 판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판사를 선거로 뽑는 사법제도 개편을 시사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선출되기를 바라는 심판은 자신들의 관점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일 것이다. 섬뜩하다. 정치권력이 옹호하는 이가 심판으로 뽑히고, 그 심판이 권력의 손을 들어주는 나라에선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숨쉬기 어렵다.
위의 책에서 심판 매수 다음 단계로 거론되는 것이 심판 해임이다. 심판이 말을 안 들으니 아예 교체해 버리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포퓰리즘의 문을 연 페론 대통령, 페루를 장기 통치하며 사실상 독재정치를 펼친 후지모리 대통령 등 여러 사례가 있다.
민주당은 이씨 사건과 관련해 ‘대북송금 특검법’을 발의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수사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종의 심판 해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검사들에 대한 대단한 겁박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비록 야당이지만 거대 권력이다. 검사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1석) 찬성으로 의결된다. 171석을 가진 민주당은 단독으로 검사를 탄핵소추할 수 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씨 선고 판결이 1심이라는 사실이다. 징역 9년6개월이 중형이긴 하지만, 이씨가 결백하다면 2심에서 얼마든지 다퉈볼 수 있다. 게다가 대법원도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심판을 공격한다. 자연스러운 의문 하나는 이씨 재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관련 없어도 이랬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법사위는 특검법 소관 상임위이자 검찰과 법원을 관할한다. 그 법사위가 이 대표 방탄에 동원될 것이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사익과 당리를 위해 공적 시스템을 악용하는 게 된다.
보수층 일각에서 이 대표에 대해 “국가 지도자답게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 지 불과 한 달도 안 됐다. 여당의 모수 개편안을 받아들이겠다며 국민연금 개혁에 적극 나서는 모습에 이 대표를 달리 보게 됐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당내에서 쏟아지고 있는 검사 탄핵 주장과 판사 공격을 방치하는 이 대표의 모습은 지도자다움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지도자라면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고 사법시스템을 위협하는 거친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참,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지금의 민주당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 아닌가.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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