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푸드로드] 같은 음식을 먹을 때 같은 맛을 느낄까?

2024. 6. 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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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미세하게, 일부 사람들은 꽤 많이 다르게 느낀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과자나 음료수를 먹어도 더 달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채소잎이나 커피를 먹어도 더 쓰게 느낀다.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맛을 다르게 느끼는 이유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연구를 해왔고, 나이, 성별, 음식 문화 등의 차이가 그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유전적 요인도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유전적 요인의 작용이 의외로 꽤 복잡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 유전자가 특정 맛 민감도 관여
사람마다 맛은 다르게 느껴져
어떤 맛에 너무 예민하면 고통
타인에 음식 강권은 조심해야

푸드로드

그 연구의 시작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화학자 아서 폭스(Arther Fox)는 실험실에서 PTC(페닐티오카바마이드)라는 가루 물질을 병에 옮기다 이 물질을 대기 중에 날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연히 근처에 있던 한 동료가 실험실 공기에서 쓴맛이 난다고 불평을 했는데, 정작 폭스 자신은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 현상이 신기했던 폭스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 물질을 맛보게 했는데, 역시 어떤 사람은 전혀 맛을 느끼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약간 쓰다고 느꼈고, 어떤 사람은 매우 쓰다고 느꼈다.

PTC에서 쓴맛을 전혀 못 느꼈던 사람은 대략 25%였다. 가족력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 현상에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눈치챘지만, PTC의 쓴맛을 인지하는 혀의 미각 수용체가 단일 유전자에 의해 전달된다는 것은 2003년에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의 7번 염색체 위에 쌍으로 올라가 있는 TAS2R38 유전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 유전자가 쓴맛을 인식하는 수용체 단백질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후 과학계에서는 TASR38 유전자뿐만 아니라, 인간이 쓴맛을 인지하는 데 관여하는 총 25종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숫자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 유전자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쓴맛을 내는 화합물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개인별 능력 차는 있겠지만, 인간은 대략 25종의 쓴맛을 찾아내거나 구분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25종의 쓴맛을 다 제대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TAS2R38 유전자처럼 어떤 변이형을 물려받느냐에 따라 특정 쓴맛을 더 강렬하게 느끼기도 하고 적당히 느끼기도 하고, 거의 또는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24종의 쓴맛 역시 유전자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지된다. 이렇게 각 개인은 쓴맛에 대한 선호와 불호가 생긴다. 쓴맛에 너무 민감하면 쓴맛을 싫어한다. 쓴맛을 적당히 느끼는 쪽이 쓴맛을 즐기는 쪽이다. 인간은 너무 강한 자극은 고통으로 인지하고, 적당한 자극은 쾌락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단맛도 마찬가지다. 단맛에 민감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사탕을 입에 넣어 주면 몸서리치며 고통을 느낀다.

이 TAS2R38을 포함한 TAS2R 계통의 유전자 변이로 인해 실생활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적인 쓴맛이 자몽 계통의 과일들이다. 특정 유전적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자몽이 가지고 있는 나린진(naringin)이라는 성분에서 강렬한 쓴맛을 느끼고, 심지어는 극심한 통증까지 경험한다. 너무나 강렬한 쓴맛에 가려 자몽의 다른 맛과 향을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나린진 성분에서 적당히 쓴맛을 느끼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자몽은 쌉싸름함과 단맛이 잘 어우러진 과일이라고 인지하며, 나린진에서 전혀 쓴맛을 못 느끼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몽은 세상 달콤한 과일이다.

음료로 가보자. 쓴맛에 덜 민감한 사람은 녹차를 향긋한 쾌락으로 인지하는 반면, 쓴맛에 민감한 사람에게 녹차는 그냥 쓴맛 나는 초록 액체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쌉싸름함을 향긋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에서 찾겠지만, 쓴맛에 민감한 사람에게 에스프레소는 혀 고문의 도구로 인식될 뿐이다.

최근 연구가 진행됨에 TAS2R38 유전자에서 쓴맛을 강렬하게 느끼는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단맛도 강렬하게 느낀다는 견해들이 등장하고 있다. 관련 연구들이 계속 진행 중이다. 쓴맛이나 단맛에 강렬하게 반응하는 것이 뭔가 더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은 조금만 달고 써도 이를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 고통에 가려져 음식의 다른 맛과 향을 즐기기 어려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주위에 채소 잘 못 먹는 사람들 너무 구박하지 마시라. 당신이 못 느끼는 고통스러운 쓴맛에 고통받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쓴맛에 조금 더 무딘 유전적 변이를 타고 태어났으면 채소를 좀 더 잘 먹었을 터인데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음식에 대한 선호와 불호를 유전적인 요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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