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일상의 장관

2024. 6. 1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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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아침은 아직 선선하다. 같은 커피를 주문한다. ‘윙’ 하는 분쇄기, ‘쉭’ 하는 스팀기. 눈을 감고 생각 속을 유영해 본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 문제와 사랑에 빠졌을까. 분주한 날일수록 한가한 짬을 가지려 노력해 본다. 연구에는 열정보다 조용한 마음이 더 절실하다.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아이디어, 동떨어진 개념 사이의 연결고리. 이러한 발견은 시간 제약 없이 끼적거릴 때, 목적지 없이 걸어 다닐 때 오히려 떠오른다. 반면, 중압감과 의무감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린다. 그저 바쁘기 위해 바빴다는 허무함을 남기기 일쑤다. 동화 『어린왕자』의 주인공은 “나는 바쁘다”만 되뇌는 어른들을 꼬집는다. “그는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지”. 수학자들이 일상에 집착하는 이유다. 매일 반복되는 자신만의 시간. 위상수학의 창시자인 앙리 푸앙카레(1854~1912)는 연구뿐 아니라, 정치·저술·광산공무직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하지만 매일 네 시간의 연구시간만은 꼭 지켰다고 한다. 다양한 공직에 오르며 바쁘게 지내던 스타 수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의 비밀도 비슷했다. 매일 새벽 네 시부터 여덟 시를 자신만의 ‘신성한’ 연구시간으로 가진다는 것. 연구는 압축할 수 없다. 바쁘다고 해서 여덟 시간 같은 네 시간의 연구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한 네 시간이 더욱 값지다. 연구는 수박 겉핥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늘만한 구멍을 수박에 뚫는 작업이다. 차분하게 뚫고 들어가야만 누구도 보지 못했던 중심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김지윤 기자

되풀이되는 일상이 따분하다는 것은 오해다. 일상은 그릇이다. 변화와 성장은 그 안에서 일어난다. 배우고 발견하는 환상적인 성장. 완벽한 인생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손 닿을 어딘가에서, 완전한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요하게 반복되는 매일, 잠깐 떠오르는 아름다운 생각들. 일상의 장관이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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