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마켓 나우] 포용력·유연성 없으면 투자도 정치도 실패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은 올바른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역사를 퇴보의 길로 내몰기도 한다. 대통령제를 처음 도입한 미국에서 링컨은 성공한 대통령의 상징, 닉슨은 실패의 본보기다.
1861년 대통령에 취임한 링컨은 노예제를 폐지하고 남북으로 갈라진 국가를 통합해 발전의 토대를 세웠다. 각주가 발행하던 은행권을 퇴출해 통화를 단일화하고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해 물류를 효율화했다. 이를 통해 대평원 곡창지대의 농산물이 전 세계로 수출됐다. 링컨의 국무장관인 윌리엄 수어드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작업에 착수해 지정학적 이점을 확보했다.
링컨의 유산을 발판으로 미국 경제는 수십 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했다. 반세기가 지나 터진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최강이 됐고 달러는 기축통화 지위를 확보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전후 국제질서를 규정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라 불린 국제금융 질서를 바탕으로 미국과 서방 경제는 1960년대 후반까지 경제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에 가까운 안정적 성장을 구가했다. 링컨이 가져온 100년의 축복이라 할 수 있었다.
닉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1969년 미국 경제는 베트남전과 과도한 복지비용 지출로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물가 오름세는 5%를 넘어섰고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했다. 재정과 무역수지의 적자 누적으로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된 달러 가치의 불안이 심화했다. 닉슨에게는 물가 안정과 달러화 신뢰 회복이라는 선결과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닉슨은 거꾸로 갔다. 1971년 그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근간인 달러의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닉슨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유능한 인사를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임명해 물가를 잡아야 했지만, 닉슨은 측근을 그 자리에 앉혔다. 시시콜콜 연준의 금리 인상을 방해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물가통제를 감행했다. 닉슨의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에 달했고 경제는 뒷걸음질 쳤다. 스태그플레이션이 197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다.
둘이 낳은 상반된 결과는 지능이나 교육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링컨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닉슨은 명문 듀크대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했다. 두 사람의 인사정책이 명운을 갈랐다. 링컨은 자신과 경쟁했던 당내 경선 후보와 야당 인사를 두루 요직에 앉혔다. 닉슨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적을 탄압했고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탄핵에 몰렸다. 정치와 투자의 공통점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연성을 잃고 오만에 빠지는 순간 실패의 나락을 피할 수 없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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