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교만을 경고한 초주의 수국론

2024. 6.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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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사람들은 『삼국지(三國志)』를 무협소설로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진면목은 몇 편의 명문장에 있다. 출사표(出師表)야 잘 알려진 글이지만, 제갈량이 주유 영전에 바친 조문, 제갈량이 왕랑을 꾸짖는 대사, 공융이 예형을 추천하는 글은 모두 외워둘 만하다. 그러나 나는 초주(譙周)의 ‘수국론(讐國論)’을 깊이 읽는다.

초주는 본디 서촉 유장의 신하였으나 유비가 서촉을 병합하자 유비를 섬겼다. 역사서 『삼국지』를 저술한 진수(陳壽)의 스승이다. 서촉 말년에 유비의 아들 유선이 혼음하고 오로지 장군 강유만이 외롭게 사직을 지킬 때 중산대부 초주가 글을 올렸다.

촉(蜀)이 어찌하면 나라를 괴롭히는 위(魏)와 오(吳)를 이기고 한나라의 황통을 다시 이을 수 있을까를 강유에게 상신했다. 나라가 기울어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주군이 겸손하지 못하고 늘 교만에 빠져 정사를 처리하기 때문이니 바른 정치를 하는 것이 치란의 첫째 요소(多慢則生亂 思善則生治)라 역설했다(『삼국지』 112회). 그의 글에는 국고를 튼튼히 해야 한다거나 국방을 튼실하게 해야 한다는 간언은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매우 어지럽다. 누구의 해외여행 기내식 비용이 4인 가족의 5년치 식비와 맞먹고,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는데 차기 국회의장 당선 취임사를 발표하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졸부가 되자 술을 4차까지 마시고 교통사고 낸 뒤 뺑소니를 쳐 일신을 망가트린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수치라는 용어가 없어지고 겸손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됐다. 다소 궁핍한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고르지 못한 것이 걱정(不患寡而患不均)이다(『논어』 계씨편).

우리 사회가 공의롭지 않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지식인의 시름이 깊어진다. 『삼국지』에서 얻어 마음의 지표로 평생 간직하는 가르침이 있다. ‘교만은 천천히 자살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후회를 모르더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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