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행복은 필요 없다
“마술 없이는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말했다. 35년의 짧은 일생을 마친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천재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이 음악가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았고, 생전에 사람들에게 기꺼이 재능을 보여주었다. 왕성하게 창작했고 때로는 인기를 끌었지만 합당한 보상은 받지 못했다. 예술가로서 야심과 높은 이상을 좇았지만 자주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극심한 빚에 쪼들렸다. 거의 모든 후원이 끊기고 생활고에 허덕이던 볼프강은 평생의 신념을 쏟아부은 오페라 〈마술피리〉를 세상에 내보인 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가 지은 〈마술피리〉는 잠시라도 그에게 마술적 행복을 줬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는 물음에 유명인 혹은 주변인이 “행복하고 싶다”고 답하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 대답은 즉시 넓고 따스한 공감을 얻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평생에 걸쳐 바랄 법한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어떤 합의가 있는 듯했다. 때로는 행복이 모든 이상을 사소하게 만드는 궁극적 가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그 선택은 내 행복을 위한 거예요’라고 하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확고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것과 별개로 정작 나는 이 답을 한 번도 쓸 수 없었다. 삶의 지향을 질문받은 순간에 “행복하고 싶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행복은 추구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차르트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마술 없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알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목표로 해서 그것을 이뤘을 때 느끼는 기쁜 감정은 행복과 구분돼야 한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했듯 “장점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행복은 요행으로 얻어지는 기쁨이다. 뜻밖의 복이기에 그토록 행복한 것이다. 어떤 마술적 인연에 의해 행복이 찾아온 그 잠시 잠깐에 내가 그것을 알아보고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마술은 내 소관이 아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노력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의 답이 될 수는 없다. 내 의지로 지향할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싶다.
문득 돌아보면 내 주변은 이미 행복에 관심이 없다. 각자의 일상을 건사하는 어른이 된 친구들은 더 이상 마술을 선망하지 않는다. 그보다 도처의 곤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 몰두한다.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고,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갖기 위해 사회에 대해 공부한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불운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기 위한 심리적 관계망과 물리적 안전망을 만들고, 모르는 사이 내가 몹쓸 인간이 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한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들 각자의 노력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굳이 물을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귀결로 타인의 삶도 존엄하다는 걸 이해한다.
나를 위하는 순간을 통해 남을 위할 힘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자신과 타인을 존중할 의무를 다하며 살아왔기에 단호하면서도 관대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자산이 있기에 자신이 싫어지고 마음이 비참한 날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 때로는 원칙이나 욕심을 버리고 타인을 위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매번 시간을 들여 고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하여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선의를 지키며 생존하는 법을 깨우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놀라운 일을 한다.
어쩌면 그 일들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마술일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마술은 늘 지혜의 영역과 닿아 있었다. 세계의 본질적 진실을 호명하는 문장이 주문이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일이 주문을 손에 넣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모차르트 또한 〈마술피리〉에서 요행한 운수를 향한 선망이 아닌, 평생 추구해 온 이상을 담았다. 이야기의 주역들은 세 가지 시련을 통과하고 마침내 힘과 지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역시 행복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 존엄을 지키려 분투하는 수많은 사람, 불의와 차별을 직시하고 분투하는 수많은 여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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