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면세점·백화점, 입점업체 근로자와 단체교섭 의무 없다"
면세점·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입점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면세점·백화점은 입점업체 근로자들을 직접 지휘 감독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취지다.
중노위는 12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 산하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백면노조)가 지난해 9월 JDC면세점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백면노조는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화장품과 향수 등을 판매하는 4개 회사(S사·C사·B사·H사)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산별노조다.
앞서 백면노조는 노동환경, 고객응대, 휴일휴가 등에 대해 JDC면세점이 실질적으로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반면 JDC면세점은 백면노조 조합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했다.
노동위는 JDC면세점 측 손을 들어줬다. JDC면세점과 입점업체 근로자가 원하청 관계나 종속 관계에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백면노조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을 상대로도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노동위는 동일하게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노동위는 “조합원들이 소속된 S·C·B·H사는 각각 독립적 기업으로, JDC면세점과 대등하게 결합해 각 브랜드의 경영방침과 판매전략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해당 업체들이 면세점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운 하청기업이라거나 JDC면세점의 사업체계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종속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S·C·B·H사는 JDC면세점 이외에 독립된 다른 백화점과 면세점을 거래처로 다수 형성해 노조원들이 JDC면세점에만 전속되어 근로한다고 보기 어렵고, 노조원들의 근무스케줄·휴가·휴일 통제 등은 주로 각 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했을 때 JDC면세점은 백면노조 노조원들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조법상 사용자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노위에 따르면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성이 인정되기 위해선 ▶입주업체 근로자가 면세점에 전속되어 근로하고 ▶근로조건이 면세점에 의해 주로 결정되며 ▶주 수입이 면세점에 의존하며 ▶사업관계의 필수적 노무제공이 면세점을 통해서만 이뤄지고 ▶면세점이 어느 정도의 지휘 감독을 하는 등의 기준이 충족돼야 한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은 제3자인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상황이 제조업에서 물류업, 유통업까지 확대하는 가운데 노동분쟁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노동위가 제시한 기준이 노동관계 안정과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22대 국회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 근로자들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도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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