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가족에게 "아빠는 잘 지내"…이중섭 미공개 편지화 3점

이은주 2024. 6.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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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미술관 2024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13일 개막
13일 개막하는 석파정 서울미술관 2024 소장품 전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중섭이 편지화. 서울미술관의 새 소장품이다. . [사진 서울미술관]
이 그림 오른쩍에는 "아빠가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편지는 1954년 10월 28일 보낸 것이다. 사진 서울미술관]


한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화가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생전 100여 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중섭은 글과 더불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열망을 그림으로 담았고, 이런 그의 편지는 오늘날 ‘편지화’라 불린다.
13일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전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12월 29일까지, 유료)에서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 3점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신사임당부터 김환기까지 유명 작가 15명의 작품 4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소장품 전시의 일환이다.

전시작은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의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통의 편지 중 일부다. 이중섭이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1장과 삽화 편지 2장으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담겼다. 이중섭은 "아빠는 건강하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썼고, 삽화에는 잠바를 입고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과 두 아들이 아내 야마모토 양쪽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편지 봉투에 적힌 날짜로 1954년 10월 28일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전시장엔 이중섭이 아내에게 결혼 전 보냈던 엽서화 6점도 함께 걸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화면에 자유로운 남녀의 모습을 담은 '사랑의 열매를 그대에게'(1941) 등이 '로맨티시스트' 이중섭의 면모를 드러낸다.

[사진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과 이중섭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미술관을 설립한 안병광 유니온그룹 회장은 1983년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비를 피하고자 섰던 명동성당 앞 액자 가게 처마 밑에서 유리 진열장 안으로 보이는 그림 한 점에 매료됐다. 이중섭의 '황소'였다. 그날 종이에 인쇄된 복제품 '황소' 그림을 산 그는 "언젠가 진짜 그림을 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2010년 이중섭의 유화 ‘황소’(1953) 원작을 35억6000만원에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또 30년 간 수집해온 한국 근현대 작가의 대표작 등을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2012년 서울미술관을 개관했다.

서울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무한의 공간'에 단독으로 소개된 이우환의 '대화'(2020)[사진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 2024 소장품 전시에 선보인 이대원의 대형 회화. [사진 서울미술관]
김환기, 서세옥, 김창열 작품이 나란히 걸린 전시장 모습. 서울미술관]

이번 전시엔 이중섭 작품 외에도 신사임당의 초충도, 추사 김정희의 행서 대련 등 조선시대 미술부터 김기창·김환기·이우환·정상화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나왔다. 이 중에서도 이우환의 대형 작품 '대화'(2020)는 그동안 흔히 볼 수 없던 것으로 특히 눈길을 끈다. 또 이 작품은 관람객이 명상하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특별히 조성된 '무한의 공간'에서 선보인다. 이밖에 김환기의 '십만 개의 점'과 정상화의 '무제' 연작, 이우환의 '바람', 서세옥의 '사람들', 김창열의 '회귀'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 전시됐다.

이 밖에 이응노의 '수탉', 천경자의 '개구리'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응노가 수탉의 넘치는 기운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면, 천경자 화백의 '개구리'는 화려한 채색과 역동적인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서울미술관에서는 이번 소장품 전시 외에도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이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성화를 모은 '예수의 생애'전, 빛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햇빛은 찬란'전을 함께 열고 있다.

한편 안 회장은 이날 '석파정 서울미술관 고백'이라는 제목의 편지 글을 공개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미술관 2∼3년 운영이면 어려울 것이라 염려했다"며 "그러나 염려는 현실이고, 미술관을 그만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에도 마스크를 쓰고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몇십 미터씩 줄 서 있던 관람객을 보며 행복했다. '젊은이들의 놀이터를 한순간에 없애버리면 안 되겠구나' 하고 정신이 들었다.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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