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통우파' 공화당 대표, 극우와 제휴 제안…정국 대혼란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정당들이 약진한 가운데, 프랑스 기성정당으로 꼽히는 공화당의 대표가 총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연합'(RN)과의 제휴 의사를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극우가 '2위 정당'으로 세력을 키운 독일에선 옛 동독·서독 지역 간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공화당의 에리크 시오티 대표는 프랑스 TF1 뉴스에 출연해 마린 르펜이 이끄는 RN과 제휴를 이번 총선에서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오티 대표는 “우리 자신을 유지하면서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다. RN과 이 당의 후보들과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단 6석을 얻어 5위에 머물렀다.
시오티 대표는 총선연대가 필요한 이유로 공화당이 좌파와 중도파를 막기에 너무 허약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를 자신의 “개인적인 노선”이라며 공화당 내부의 동조를 호소했다.
AFP에 따르면 르펜은 시오티 대표의 이런 결정에 대해 “용기 있는 선택”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도 TF1 뉴스에 공화당과의 협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프랑스에서 정통 보수로 꼽히는 공화당이 극우 정당과의 연대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화당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침략에 맞선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공화당은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최근 의석수가 크게 주는 등 쇠락한 모양새다.
이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시오티 대표의 제안에 거센 반발이 나왔다. 공화당 소속 제라르 라셰 상원의장은 RN과의 연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오티의 당 대표 사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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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 수천 명 시위 “각성 안 하면 극우 집권”
한편 이날 르몽드·르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스 전역에선 RN의 유럽의회 선거 압승에 반발한 이들이 시위를 벌였다. 전날 저녁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경찰 추산 3000여 명이 모여 “파시스트를 싫어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좌파 세력이 뭉칠 것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녹색당사 방향으로 행진하며 벽에 “마크롱도 아니고 바르델라(RN 대표)도 아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극우 반대 집회는 툴루즈(6200명), 마르세유(2200명), 렌(4000명) 등에서도 열렸다. 렌의 시위에 참여한 마리(69)는 “극우에 대항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일부 시위대는 쓰레기통에 불을 붙였고,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해산시켰다.
노동총동맹(CGT) 등 프랑스 노동조합 5곳은 이번 주말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이들은 “우리 공화국과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며 “우리가 각성하지 않으면 극우가 권력을 잡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RN 지지 마크롱당 2배…동거 정부 가능성
그러나 이런 시위에도 조기 총선(30일 1차 투표, 7월 7일 결선 투표)까지 남은 3주 안에 판세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업체 해리스 인터랙티브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유권자 중 34%가 1차 투표에서 RN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좌파 정당 연합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당인 르네상스당을 찍겠다고 답한 이는 각각 22%, 19%에 그쳤다.
이에 RN이 1당 지위에 올라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Cohabitation)가 구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대통령이 다수당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게 관례여서다. RN 대표 바르델라의 총리설이 급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RN은 제1당이 되기 위해 주류 우파인 공화당, 다른 극우정당 르콩케트와 공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맞서 좌파 진영은 극우세력이 1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선거구에 단일 후보를 내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해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성과는 있었다"며 "나는 2027년에 극우에게 권력의 열쇠를 내주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르피가로 매거진과 인터뷰에선 “정치는 역동적이다. 나는 여론조사를 믿어본 적이 없다”며 “의회 해산은 프랑스 국민에 대한 큰 신뢰의 표시다. 조기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RN이 총선에서 승리해 퇴진을 요구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엔 “헌법을 만드는 건 RN이 아니다. 제도는 명확하고 결과가 어떻든 대통령의 자리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옛 동독서 극우 정당 최고 득표 “과거 복귀 서사 먹혀”
독일에서도 유럽의회 선거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개표 결과에 따르면 16개 주 가운데 튀링겐 등 옛 동독 5개 주에서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나머지 11개 주 중 8곳에선 중도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제1당 자리를 지켰다.
옛 동독 5개 주에선 전 동독 마르크스주의자가 6개월 전 창당한 정당인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도 전국 평균 득표율 6.2%를 훌쩍 넘는 14%의 표를 가져갔다. BSW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나 난민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AfD와 유사한 입장이다.
벤자민 혼 켐니츠공대 연구원은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옛 동독 지역에서) AfD는 좋았던 옛날로의 복귀를 약속하는 서사를 제시하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헨드리크 뷔스트 총리는 동서 교류를 위한 ‘통일조약 2.0’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극우 정당 젤렌스키 비난, 러시아와 판박이
이런 가운데 AfD와 BSW 소속 의원들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반대한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이날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 불참했다.
AfD는 성명에서 “젤렌스키의 임기는 만료됐다. 그저 전쟁과 구걸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며 “우리는 위장복을 입은 연사의 연설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임기가 지난달 끝나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AfD는 소속 일부 의원이 러시아 측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AfD와 BSW에 대해 유럽의회의 마리아그네스 치머만 의원(자유민주당)은 “푸틴이 독일에서 자신을 생각 없이 따르는 두 번째 정당을 갖게 됐다”고 꼬집었다.
한편 가디언은 핀란드·스웨덴·덴마크에선 극우 의석 수가 줄었다고 보도했다. 북유럽에선 이미 극우 세력이 집권했고, 권력을 잡으면 인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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