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치료비 ‘먹튀’ 피해…막을 방도 없나
치료비를 한번에 미리 계산한 병원이 폐업하거나 돈을 돌려주지 않고 돌연 잠적하는 이른바 ‘먹튀’ 행태가 잇따르면서 환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피해 구제가 어려울 때가 많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상대로 한 계약 불이행·위약금 피해 구제 분쟁은 증가 추세다. 치과는 2021년 18건에서 2023년 46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피부과는 56건에서 152건으로 급증했다. 피부과 피해 사례를 보면 피부 관리 시술 패키지를 이용하려고 선납했다가 치료가 중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치과에선 임플란트 시술, 교정 치료 등 장기적인 유형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최근엔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치과의사 A씨가 ‘치료비 먹튀’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A씨는 스토커의 살해 협박에 시달리다 최근 운영하던 치과를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선결제한 치료비를 돌려주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A씨는 지난 8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치료비 먹튀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50만원 크라운 치료 환불이 미처 안 된 분이 있어서 내용을 확인하고 환불해줬다”고 해명했다. 피해 환자들은 소비자단체와 함께 A씨에 대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의료기관들의 치료비 먹튀 행태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 2018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투명 치과’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서 한 치과는 일반 교정보다 훨씬 싼 투명 교정을 해주겠다며 반값 치료비 등 각종 혜택을 내세워 환자를 모집했다. 치료비는 선납으로 받아놓고 정작 치료를 중단해 원장 등이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소비자들은 치료비를 이미 낸 상황에서 폐업 등으로 인해 치료가 중단되면 의사와 연락이 두절돼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 소비자에 대한 보호는 입원환자에 국한돼 있다. 시술 패키지나 교정 등 장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환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전무하다. 병원 폐업·휴업의 신고에 관한 의무사항을 규정한 의료법 제40조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가 폐업·휴업하는 경우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조치해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돌연 폐업하고 다른 지역에 의료기관을 개원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0조에 의하면, 휴‧폐업 예정인 의료기관은 휴‧폐업 신고 예정일 14일 전까지 △휴‧폐업 개시 예정 일자 △진료기록부 이관‧보관 등에 대한 사항 △진료비 정산‧반환 등에 관한 사항을 담은 안내문을 환자와 보호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환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소송밖에 없다. 그러나 대개 소송 비용에 비해 피해액이 크지 않아 소송을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복잡한 소송 과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는 치료비 먹튀 피해를 막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 의료기관 설립·폐업은 신고제로 돼 있어 폐업한 후 다시 다른 병원으로 문을 열 수 있다. 이 점이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폐업 처리 전 소비자 피해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 방안을 함께 제출하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의 자정작용을 강화하고, 환자 피해 대처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조 대표는 “의사단체들은 회원 관리를 강화하고 환자를 위하는 공익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며 “자체적으로 보증보험에 들거나, 환자 피해 구제 절차를 의무화해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단체는 의료법 위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경 치협 법제이사는 “일부 치과들이 환자를 유인하기 위해 이벤트를 활용하고, 낮은 가격으로 대량 모집을 하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은 치과의 수용 능력을 초과하게 만들어 질 높은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게 하고, 결국 치과가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사태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의료광고 심의에 신경을 쓰고 불법광고 모니터링을 시행한다”며 “의료법 위반 신고센터도 운영해 자정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 비의료인이 관여하는 사무장병원 문제도 치료비 먹튀 행태가 반복되는 근원으로 지목됐다. 박 법제이사는 “사무장병원에서 불법 위임진료 등 비윤리적 진료 행태가 나타나고 있어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민 건강에 위해를 미치고 있다”며 “비윤리적 의사들의 일탈을 제지할 수 있는 자율징계권이 치협에 주어지지 않고 있어 피해 예방이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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