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지배구조, 총수일가 중심…"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아야"
학계, 지배주주-일반주주 이해충돌 상황이 핵심
일반주주 이익 훼손 막아야…주주권 강화 필요
22대 국회와 정부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상법 개정 논의가 재점화한 가운데 국내 상장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의 핵심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상황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배주주가 사익을 편취하는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학계 전문가들은 일반주주 보호와 주주권 강화를 법적·제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배주주-일반주주 이해충돌 때 'N분의1' 원칙 붕괴"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 불스홀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를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최근 주요 이슈인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방향을 두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장기업의 지배주주(오너일가)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거래가 있다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반주주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의사결정자(이사회)에 대해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 충돌에 따른 주주 간 부의 이전(N 분의 1 원칙)이 붕괴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지배주주가 일감몰아주기, 기회 유용 등을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사익을 편취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일반주주의 이익이 훼손되는 사례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공정거래법(부당지원금지 규제,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 금지), 상법(회사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등을 개정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제재해왔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법은 해당 산업에서의 공정거래를 저해하고 경쟁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며 "즉 주주 간 부의 이전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경쟁 제한) 관점에서 제재하기 때문에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의 대기업 경영 체계를 고려하면 공정거래법으로 주주 간 부의 이전 문제를 규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개별기업보다 기업집단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라며 "합병·신주발행·자산매매 등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주주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개별기업 중심의 제도 개선(사외이사 제도)은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계열사의 부당 지원 등을 제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 주체(계열사의 주주)의 손해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상장기업에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의사결정자(이사회 또는 지배주주)에 대해 의무를 부과하자"며 "지금보다 일반주주의 권익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현재 발의된 상법 개정안은 한계가 있다고 조언했다. 개정안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조문에 도입하더라도 판례를 고려하면 법원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현행 회사의 이익과 유사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합병 등 주주의 손익이 회사의 손익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거래 유형에 한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하거나 합병 관련 손해배상 규정 등을 신설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런 거래에 대해서는 법원의 적극적인 판례 변경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거래(지배주주가 거래 쌍방에 이해가 있는 자기거래)에 대해 미국 수준의 '완전 공정의 원칙(entire fairness)'을 요구하는 조문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수 일가 중심 지배구조…대리인 문제 필연적
이어 두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나현승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문제를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현재 지배주주가 낮은 보유지분으로도 계열사 및 비영리법인 등의 지분을 이용해 모든 계열사에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행태라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지배주주와 소수 주주 간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공정위의 '2023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 소유현황'을 보면 총수 집단 내부지분율은 61.2%로 5년 전인 2019년(57.5%)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 중 총수 일가가 직접 보유한 경우는 3.6%에 불과하나 총수 일가 이외가 57.5%에 달했다. 낮은 보유지분으로도 계열사와 비영리법인 등 지분을 이용해 전 계열사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배주주가 높은 지배권을 활용해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합병, 인적 분할 시 자사주의 마법, 물적분할 후 자회사 동시상장 등을 단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수 주주의 부가 이전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나현승 교수는 "시장은 지배주주와 소수 주주 간 이해 상충과 소수 주주의 이익 침해로 인한 가치 저하를 가격에 반영한다"며 "기업가치와 주가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향으로는 주주 중심으로 회사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한 자율 개선을 꼽았다. 과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여성 이사 선임 규제 정책이 기업 주가 저하로 이어졌던 반면, 대형 뮤추얼펀드들이 2017~2019년 3년간 진행한 캠페인이 여성 이사 비중 확대와 주주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지배구조는 투자자 보호가 핵심으로 일반주주의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며 "(일반)주주의 주주권을 강화해 이들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주장하며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자고 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률적 정책보다는 주주들이 기업과 논쟁해서 해결점 찾아가도록 하는 게 좋겠다"며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 자금 위탁 등 정책적 지원을 통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사 후보 추천 등…주주제안 더 쉽게 만들어야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의 권리 강화가 중요하다며 △카카오톡 등을 활용한 주주총회 정보 알림 △주총 개최일 분산 △소집통지 시 감사 보고서 제출 등을 제안했다.
황현영 연구위원은 "현행 상법상 주주는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며 "주주제안시 회사가 요구하는 주주 증명 절차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또 "임시주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주제안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며 "현재 임시주총 소집 통지가 주총일 최소 7주 전이 아니면 주주제안권 행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5% 룰 위반 시 의결권 제한 등 제재조치가 강력하다"며 "이사선임 관련 주주권 강화를 위해 5% 룰,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 등 관련 제도에 대한 정비를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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