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 일어나면, 이기고 지는 것은 무의미

구교형 2024. 6. 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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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풍선·대북 방송 재개... 정말 전쟁을 하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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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자지구 접경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기도하라'를 가지고 종교와 신앙을 한 번 더 다루려고 했지만, 더 시급하고 중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최근 정세가 정말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만 아니라 국제정세 전체도 1,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해 보인다. 1, 2차 세계대전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무한한 능력을 계속 확장하려는 제국주의 세력들 사이의 식민쟁탈전의 성격을 띠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시장 확대와 무한성장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더욱 치열해진 세계 패권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물러설 수 없는 극한 대결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불길하고 위험한 사실이 있다. 세계적으로 정치와 외교의 타협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실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마다에서 인간사회는 긴장과 대립, 격돌을 피하기가 참 어렵다.

이때 모든 것을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지나친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적당한 명분과 실리를 서로 보장하는 수단이 바로 정치와 외교다. 그래서 정치와 외교의 현장에서는 이겨도 모두 얻지는 못하고, 져도 다 잃지는 않는 절충점을 찾아 함께 살려는 공존 방식이다. 정치와 외교는 약점도 수없이 많지만, 최소한 극단적인 전쟁과 공멸을 피하는 데 기여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정치와 외교의 역할과 공간이 좁아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죽든 살든 한번 붙어 보자'는 태도가 국가나 지도자들의 일반 원리가 되었다.

20세기 냉전 시대에도 서방과 공산 측이 세계 모든 전선에서 충돌하고 대립했지만, 양측을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은 간헐적 국지전이 생겨도 더 큰 전면전으로 타오르지 않도록 진영 내부를 단속하고, 상대 체제와 정치, 외교적 밀당을 벌여 수위를 조절했다.

1990년대 냉전체제가 끝난 뒤에도 30여 년 동안 미국이 가장 강력한 원톱이 되어 세계를 주도했지만, 어느 순간 성장한 중국의 위치를 인정했고 세계와 한반도에서도 슈퍼파워들은 막후 조정을 벌였고, 유럽과 러시아도 나름 위기 조정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정치와 외교의 공간이 빠르게 사라지고, 전쟁 불사를 외치는 '용감한' 정치지도자들만 늘어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냉전 이후 줄어든 자국 영향력을 만회하겠다며 '설마' 하던 의구심을 걷어내고 위험한 전쟁을 도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깊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뒤바꿀 어떤 수단도 없으면서 휴전을 거부하고 서방 측에 무한 군사동맹을 요구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많은 국민이 죽고 잡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테러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위험한 중동전쟁을 시작했다. 더구나 인종청소에 가까운 살육을 서슴지 않아 국제사회와 유엔은 물론 미국까지 우려와 자제를 압박하지만, 중동의 확전을 불사하더라도 가자 살육을 멈출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놀라운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다. 위험한 동유럽과 중동의 확전을 막도록 적극 나서긴커녕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에 자국이 제공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해도 된다고 공언하고, 이스라엘의 자제를 말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은 조금도 줄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30년 이상 일정 정도 국제 위기 관리자로 있던 유럽과 일본도 선수로 뛰기 위해 몸을 풀고 있는 상황이다. 냉전 시대에도 작동되던 정치는 사라지고, '등 보이면 진다'며 전쟁 불사를 국가정책으로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정치와 외교를 포기하면 타협과 조정의 공간은 사라지고 군사만 남는다. 세계적 기후와 경제불황, 인구 감소 공통 위기 앞에서 군사만이 홀로 호황을 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구나 핵무기가 단지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정치적 압박 수단을 넘어 현실적 전쟁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공언하는 핵보유국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 정치지도자들이 집단적으로 이성을 잃은 듯하다. 아니, 그보다는 근대 이후 나름 인류발전에 공헌한 대의적 대중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국민 생명을 걸고 도박 벌이는 이
 
 지난 9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일대에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떨어진 뒤 안에 담긴 폐지에 불이 붙어 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오물 풍선에서 나온) 폐지에 왜 불이 붙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인천소방본부
 
사실 우리는 남 얘기할 여유가 없다. 지금 윤석열과 김정은의 한반도야말로 가장 위태하다. 2019년 믿었던 한반도 평화 전환 시도가 좌초된 후 김정은의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과의 공생 자체를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핵과 미사일 등 전략무기는 물론 극단적 정치 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더 좋지 않은 건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다. 집권 후 2년 동안 중국, 러시아와 정면 대치하고 북한을 적대하는 외교, 군사상 한미일 동맹 구축에 집중하여 한반도 위기를 높였다. 북한 체제와 주민에 대한 고도의 심리전인 대북 풍선 띄우기를 사실상 지원하다가 이번에는 북한의 오물 풍선 세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다시 북한을 비난하고, 남북 군사 예방 조처인 9·19 협상의 전면 폐기를 선언하고, 확성기 방송과 전방부대 훈련 재개를 예고하였고, 탈북민단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전단 20만 장을 날려 보내 이를 뒷받침했다.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를 겸하고 있는 윤 대통령은 나날이 강해지는 한국군 전력과 군사력에 자부심이 차올라 '혹시 전쟁이 나더라도 싸우면 결국 우리가 이긴다'며 '강하게, 더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원수가 가져야 할 생각은 '전쟁 나도 이긴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어떻게든 민족 참살을 막을 방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 지도자들만도 못하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군사 대치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데다가, 자식도 없어 자식 목숨 귀한 줄도 모르는 듯하다. 더구나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이나 훈련병 사망 사건에서 보듯, 책임져야 할 사병의 안전과 생명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남의 자식들을 앞세워 전쟁 불사를 외치는 파렴치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백악관 재입성을 기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인사들은 미군 철수와 전술 핵무기 재반입 등을 언급하며 한반도 안보 간보기를 본격화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응은커녕 의미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누구도 알 수 없으나 전 세계적으로 발화점이 점점 높아지는 건 분명하다. 냉전(cold war)도 무서운 전쟁이지만, 그나마 대량 살상이 일어나는 열전(hot war)을 막아주는 냉각제 역할을 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국제정세는 서서히 열전을 불사하는 정치인들이 힘을 얻고 있고 윤석열과 김정은도 그들 중 하나인 듯하다.

정치인들이 겉으로 '전쟁 불사'를 외치더라도 군사적 우위와 정치적 이득이 분명할 때만 진짜 전쟁을 각오한다. 그러나 여기에 매우 중요한 변수 하나가 빠졌다. 전쟁은 이렇게 정치적 계산과 군사적 승산이라는 논리만큼이나 '어쩌다 전쟁' 같은 우발성도 매우 크게 작용한다.

최고 지도자와 군 수뇌부의 명령이 일선 부대로 하달되어 개전 되는 '정상적인 전쟁'만 아니라 일선 부대 사이 이미 일어난 돌발상황에서 비겁하게 물러섰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고 지도자와 군 수뇌부가 진짜 전쟁에 돌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일전쟁(1937년)으로 이어진 만주사변(1931년)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걸고 나서기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벌이는 이는 국가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전단 살포를 막고 대북 접촉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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