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없이도... 김경문 감독 900승이 특별한 이유

이준목 2024. 6. 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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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역대 6번째로 감독 통산 900승 고지... 새로운 역사 만들어낼까

[이준목 기자]

▲ 포수 이재원과 손 마주치는 김경문 감독 김경문(가운데) 한화 이글스 감독이 11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방문 경기에서 승리해 900승을 채운 뒤, 포수 이재원과 손을 마주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 연합뉴스
 
'한국야구의 전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 역대 6번째로 감독 통산 900승 고지에 오르는 금자탑을 세웠다. 현역 중에서는 유일무이한 대기록이다.

6월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정규시즌 경기에서 한화는 두산 베어스와의 맞대결에서 6-1로 승리했다. 한화는 이날 승리로 최근 3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을 벗어나며 28승 1무 34패로 7위를 지켰다.

특히 김경문 감독은 개인 통산 1707경기 만에 900번째 승리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기쁨이 두 배가 됐다. 900승은 32년 KBO리그 역사에서 김응용(1554승)·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 (936승), 강병철(914승) 감독에 이어 김경문 감독이 여섯 번째다.

이들은 현재는 모두 은퇴했고. 현역은 오직 김경문 감독이 유일하다. 한화가 올시즌 80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김 감독은 올시즌 내에 강병철 감독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5할 정도의 승률만 거둬도 김재박 감독을 넘어서 통산 감독 최다승 4위까지 등극할 수 있다.

또한 한화와 3년 계약을 맺은 김경문 감독의 계약기간을 고려할 때 빠르면 내년 시즌에 3위 김인식 감독마저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 김응용-김성근에 이어 KBO 역대 세 번째로 '1000승'의 금자탑에 도전할 유일하고도 유력한 후보는 김경문 감독 뿐이다.

'명장'이 된 김경문의 900승 대기록

김경문 감독은 OB베어스(두산의 전신)와 태평양 돌핀스에서 포수로 선수시절을 보냈고, 은퇴 후 삼성과 두산 코치를 거쳐 2004년 46세의 나이로 두산 사령탑에 선임되면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감독 김경문'의 시작은 사실 행운도 따랐다. 당시 두산은 9년간 팀을 이끈 전임 김인식 감독이 사퇴하고, 유력한 차기 후보로 거론되던 선동열 감독이 삼성행을 선택하면서, 배터리 코치였던 김경문이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대타'로 선임된 것에 가까웠다. 당시만 해도 김경문 감독은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무명의 지도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부임 첫해부터 전 시즌 가을야구 진출조차 실패했던 두산을 일약 3위로 끌어올리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 감독은 두산과 신생팀 NC 다이노스를 거치며 1군에서만 14시즌을 지휘하며 포스트시즌 진출 10회, 한국시리즈 준우승 4회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2008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베이징올림픽에서 사상 첫 9전 전승 금메달이라는 위업까지 달성하며 당대의 '명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김경문 감독은 2018년 6월, 성적부진으로 NC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한동안 부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KBO리그 통산 승수는 896승에서 멈췄다. 또한 2019년에는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어느덧 노장이 된 김경문 감독이 다시 현장에 복귀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지난 5월, 예상치 못하게 한화가 김경문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시즌 가을야구 진출을 노렸던 한화는 연이은 부진으로 팀 성적이 하위권으로 추락하자 최원호 감독과 결별을 선택하고 후임 감독을 물색해왔다. 한화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윈나우와 리빌딩에 모두 일가견이 있는 백전노장이라는 점에서 김경문 감독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김경문 감독은 66세로 현재 KBO리그 현역 최고령 사령탑이다. 현대야구 트렌드가 시스템 위주로 바뀌었고 40~50대 젊은 감독들이 득세하고 있는 KBO리그에서 '올드스쿨'이 다시 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않았다. 김경문 감독은 부임 기자회견에서 "야구인으로서 지켜온 원칙과 소신은 이어가되, 젊은 선수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화는 김경문 감독 부임과 동시에 KT 위즈를 상대로 시리즈 스윕 3연승을 달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김 감독은 고령과 공백기에 대한 우려가 무색하게 노련한 용병술과 투수교체 타이밍, 적재적소의 작전구사 등으로 승리를 이끌며 현장 감각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보던 한화 팬들도 김 감독의 부임 이후 단기간에 팀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경문 감독은 900승을 목전에 두고 잠깐 '아홉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화는 김경문 감독의 친정팀인 NC와의 주말 3연전에서 1무 2패에 그치며 김 감독의 대기록으로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공교롭게도 한화의 다음 상대 역시 김경문 감독이 처음 감독 경력을 시작했던 두산이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김경문 감독과 국가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함께 호흡을 맞추며 '믿음의 야구'를 통하여 베이징올림픽의 기적을 함께 이뤄냈던 인연이 있었다.

한화는 대체 외국인 투수 바리아가 6이닝 3피안타 1실점의 빛나는 호투를 펼쳤고, 타선에서는 장단 11안타를 터뜨리는 집중력으로 5월 MVP가 빛나는 두산 선발투수 곽빈을 무너뜨리고 일찍 승기를 잡았다. 노시환과 이재원이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장진혁이 2타점으로 활약하며 스승에게 900승의 대기록을 선물했다.

김경문 감독에게 남은 '마지막 도전'
 
▲ 경기장 바라보는 김경문 감독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신임 감독이 4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kt wiz와 경기를 앞두고 더그아웃에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900승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업적이지만, 오직 김경문 감독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이한 기록도 있다. 900승 이상을 달성한 감독 중 우승이 없는 인물은 김경문 감독 뿐이다. 최다우승 사령탑인 김응용 감독(10회)을 비롯하여 한국야구 역대 최다승 1~5위 감독들의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을 모두 합치면 21회에 이른다.

물론 김경문 감독은 선배 감독들에게는 없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경력이 있기에 완전한 '무관'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한국시리즈는 물론 정규리그 우승 경력이 한 번도 없어서 '만년 2인자'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우승이 없다는 것은 비록 김경문 감독 개인에게는 아픔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바꿔 말하면 우승 없이도 그토록 오랜 시간 감독 경력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는, 김 감독의 모든 지도자 커리어를 통틀어 부임 당시에 우승후보로 꼽힐 정도의 강팀을 맡아본 일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2004년의 두산은 OB 시절의 마지막 전성기로부터 세대교체가 이뤄지던 과도기였고, 2011년의 NC는 갓 창단한 최약체 신생팀, 올해 중도에 부임한 한화 역시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며 암흑기를 보냈던 팀이다. 베이징올림픽 역시 한국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는 동메달이었고, 전력상 우승까지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런 '언더독' 팀들을 하나같이 성공적으로 재건하여 정상권까지 끌어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김경문 감독이 단지 우승을 못했다는 결과론만으로, 우승 감독들에 비하여 저평가 받을 필요가 전혀 없는 이유다.

또한 한화는 김경문 감독의 900승을 함께하면서 유일하게 KBO리그 역사상 90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을 5명이나 보유했던 구단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김응용-김성근-김인식-강병철 감독은 모두 한화 사령탑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다승 탑 10으로 범위를 넓히면 빙그레 이글스 시절 고 김영덕(707승, 역대 7위)도 있다.

다만 이들 중 한화에서 우승을 달성한 감독은 전무하다. 그나마 김인식 감독만이 2006년 한화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지만, 김응용-김성근 감독은 가을야구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장했다. 김경문 감독은 내로라하는 선배 명장들도 줄줄이 실패했던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은 물론, 본인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징크스'를 깨야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김 감독은 대기록 달성 직후 "900승을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화가 나를 믿고 불러주신 덕분에 이렇게 기록도 세웠다. 정말 고맙다"며 구단과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한편으로 "승리는 감독을 오래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많이 따라오는 일이다. 하지만 절대 나 혼자서 할 수 없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이며 "나만 자꾸 띄워주면 안 된다. 내가 건방지게 된다. 우리 한화 구단, 스태프, 선수단, 그리고 팬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더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대기록에 도취되기보다 다음 경기를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날마다 한국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66세 백전노장의 위대한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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