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앞에 선 인간, 당신은 영원히 살고 싶나요?

김성호 2024. 6. 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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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50] <원더랜드>

[김성호 기자]

세상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가장 아름다운 꽃도 열흘이면 시들고, 가장 예쁜 인간도 십 년이면 전과 같은 생기가 없다. 그 귀함을 어떻게든 붙들고자 발버둥치는 게 인간이다. 생명을 흉내 내고 유전자조작까지 하여서 좀처럼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고자 분투한다. 사람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인 것이 온갖 시술과 수술이며 화장품에 더하여 아예 몰래 국경까지 넘어가서 금지된 처치를 받고 오는 부자들의 사례를 심심찮게 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만큼은 정복되지 않았다. 죽음,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다. 영원한 갈라섬, 내 죽음만큼, 혹은 그보다도 훨씬 가슴 아픈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누구의 죽음이다. 가장 정 없다던 인간조차 부모며 친구들이 죄다 죽고 난 뒤에는 그 삶을 감당치 못한다고 소리소리 지른다고들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정든 이들과의 완전한 단절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타격을 안기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죽음마저 정복할 수 있다면? 수많은 SF 문학과 영화들이 이 주제에 천착해 온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인간이 영생을 얻는다면 과연 행복한 세기가 열릴까. 우리가 아는 영생까진 아니라도 뇌를 데이터화해 서버에 업로드한다면 또 어떨까. 인간의 존엄이 비단 육체의 유무에서만 오는 것일까. 인간의 의식이 육체 없는 곳에서도 똑같이 기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원더랜드 포스터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옴니버스 가족드라마로 영생을 다루다

이미 많이 나온 주제일지라도 볼 때마다 새로운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엔 한국 영화감독이 이토록 익숙하고 낯선 SF를 한 편 찍어냈다. 정통 SF의 문법이 아닌, 가족드라마의 방식으로. 김태용의 <원더랜드> 이야기다.

'원더랜드'는 본래 J.M. 바리의 소설과 연극 <피터팬과 원더랜드>에서 유명해진 세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걸리버 여행기>에서 유명해진 '라퓨타'를 제 작품 <천공의 섬 라퓨타>로 새롭게 해석했듯, 김태용은 <피터팬> 속 원더랜드를 새로이 해석한다. 원작에선 늙지 않는 꿈과 환상의 세계였던 원더랜드가 <원더랜드> 속에선 죽은 이가 죽은 줄도 모르고 영생을 누리는 세계로 탈바꿈한다.

영화 속 원더랜드는 생전 인격과 성격을 딴 인공지능(AI)이 생전 인물의 외양으로 살아가는 온라인 세계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업체가 직접 AI를 구현해 서비스하고, 그는 그곳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용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AI는 제가 죽은 누구로부터 태어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용자들이 요청한 형태로 살아가며 존속한다. 누군가는 그를 우주공간에 보내고, 하와이 같은 휴양지에 보내며, 사막 가운데 유적을 발견하는 이로 살아가게도 한다.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꿈이거나 그와 같은 모습을 원했던 이용자의 기대거나 또 다른 무엇이 AI의 삶을 이룬다.

김태용은 작품을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었다. 옴니버스 영화가 가진 장점, 여러 주인공을 동시에 기용해 다채로운 삶의 형태를 내보일 수 있다는 데 주목한 것일 테다. 그중 하나가 바이리(탕웨이 분)다.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그녀는 AI다. 다국적 펀드매니저로 바쁘게 살던 그녀가 병에 걸려 일찍 죽자 그 어머니가 조실부모한 손녀를 우려해 서비스를 신청한 것이다.

금기에 도전하는 인간의 상징
 
▲ 원더랜드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생전 업과는 딴판으로 사막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바이리의 삶이 어딘지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그녀는 사막 한가운데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팀원들과 '생명의 나무'를 발굴하는데 한창이다. 이따금씩 딸과 연락하는 걸 제외하곤 종일 발굴작업에 열을 올린다. 왜 생명의 나무인가. 그것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만큼 평자의 관심을 붙든다.

생명의 나무라 하면 고 히브리어로 '엣츠하임 Etz Hayim'이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에선 신이 천국 한가운데 이 나무를 심어두었다고 전한다. 영원한 삶을 주는 열매를 맺는, 그러나 결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나무. 금단의 열매를 맺는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아담과 하와는 영영 고통이 가득한 세계로 방출된다. 그곳에는 질병과 노화, 죽음이 있고, 슬픔과 절망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여 인간에겐 기쁨도, 행복도, 그밖에 온갖 좋은 것들도 생겼다고 누구는 말한다. 나 역시 그와 뜻을 같이한다.

단군설화에서도 하늘과 땅을 잇고 생명이 흐르는 신단수가 등장하고, 여러 다른 문화권에서도 이와 같은 상징적 나무 설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생명의 나무를 어느 한 문화가 배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중요한 건 생명의 나무는 인간이 품지 못한 원초적 힘을 가진 존재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인간이 제게 주어진 제약을 넘어설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준다는 점에 있다.

바이리가 찾으려 하는 생명의 나무는 누군가에겐 금기이며, 역사를 거듭해 금기에 도전해온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겐 필연적으로 닿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죽음을 대하는 다채로운 모습들
 
▲ 원더랜드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원더랜드>는 바이리와 동일 선상에 여러 인물을 배치한다. 식물인간이 된 애인 태주(박보검 분)를 잊지 못해 서비스로 그를 본딴 AI와 매일 만나는 정인(수지 분), 제 부모를 모두 원더랜드에 올려 매일을 그들과 일상을 나누는 서비스 수석 플래너 해리(정유미 분),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직접 제가 꿈꿔온 휴가지로 저를 보내기로 한 남자(최무성 분), 요절한 손자를 그리워해 그를 서비스에 등록하고 온갖 선물을 사 보내는 할머니(성병숙 분) 등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원더랜드를 이용한다.

누군가는 등록된 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또 누구는 애써 모른 체하며, 어느 누구는 그를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관계를 맺는다. AI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를 인간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 어쩌면 신조차 오늘의 인간을 저와 구분하지 못하리란 생각까지 뻗쳐가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영화는 AI며 생명의 나무와 관련한 진지한 이야기로 스스로를 몰아가지 않는다. 한 인물의 드라마에 천착하는 대신 옴니버스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으로, 다양한 인물을 통해 기술을 대하는 다채로운 상황을 관객 앞에 내보인다.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죽음은 어떤 각도에선 이미 극복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원더랜드가 마침내 현실에 손을 내미는 결말은, 한편으론 완전한 단절이고 닿지 못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관점이요, 기술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이란 뜻일까.

옴니버스의 장단, 김태용의 의도는?
 
▲ 원더랜드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보긴 어려운 작품일 수도 있겠다. 한 인물에 집중하며 보다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육체의 소멸과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 개인이며 가족들의 선택은 오늘의 관객 앞에 얼마든지 흥미로운 문제로 던져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더랜드>는 옴니버스의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이 형식이 지닌 장점인 가벼움과 단점인 깊이 없음을 기꺼이 맞바꾼다.

다소 빤한 가족드라마적 전개와 연출이 첨예한 갈등을 드러낼 수 있는 현재적 딜레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분명하다. 예쁘고 멋진 배우들 중 다수는 제한적인 배역과 시간 속에서 특징적인 존재감을 내보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모두를 좋게 하려다가 아주 좋아지지 못한 설정과 연출의 소극성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아쉬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 또 이해관계가 같은 배우들에 치중해 캐스팅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테면 영화엔 소속사가 같은 배우 세 명이 출연한다. 수지, 공유, 정유미가 모두 같은 소속사에 속해 있는 것이다. 정유미와 최우식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래 합을 맞추었고, 공유와 정유미가 다른 작품에서도 공연한 바 있단 점은 <원더랜드> 캐스팅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밖에 없다. 그러나 김태용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껴안는다.

당신의 선택을 묻는다. 영원히 살 것인가?
 
▲ 원더랜드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바이리가 모래폭풍을 뚫고 운전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어떤가. 영화는 이를 마치 한 편의 자동차 CF처럼 찍어낸다. 현대차 로고가 선명히 드러나고 자동차의 위엄이 배우의 의지보다 두드러지는 이 장면이 관객에게 실소를 짓도록 한다. 간접광고로 조롱 받아온 할리우드 영화들, 이를테면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저리가라 할 만큼 민망한 장면으로, 벌써 영화를 본 이들 중에선 '현대차 광고 잘 보았다'는 조롱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김태용에게 도전정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한국에선 뚜렷한 성공사례가 없는 일상적 SF영화를 옴니버스 가족드라마와 결합해 내놓았단 점이 그렇다. 이런 류의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아직 닥쳐오지 않은 기술이 우리 삶을 파고들 때, 관객은 미리 제가 겪을 수 있을 윤리적 딜레마를 한 발 앞서 고민하는 간접적 경험을 갖는다. 수지와 박보검, 탕웨이와 공유, 정유미와 최우식 같은 호감형 미남미녀 배우의 제일가는 미덕이란 거부감 없이 캐릭터에 동일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으로, 간접경험으로 관객을 이끄는 데 최적의 캐스팅이라 해도 좋겠다.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들은 원더랜드 서비스의 이용 여부를 일찌감치 결정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신은 과연 어떠한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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