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박람회서 '화재보험 1년 무료' 들었더니 개인정보 줄줄

최동현 2024. 6. 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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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개인정보 DB 매매 횡행
DB 등급 나눠 건당 십수만원에 판매
사전 동의없이 무작위적으로 팔려나가

보험영업 현장에서 고객 개인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DB)를 등급으로 나눠 거래하는 행태가 횡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적으로 수집·유포된 개인정보가 곳곳에 공유돼 무작위식 스팸전화에 시달리는 고객도 늘고 있다.

보험영업은 크게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지인영업과 무작위적인 타인에게 하는 DB영업으로 나뉜다. 지인영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사실상 DB영업을 잘하는 설계사가 우수 설계사로 평가받는다. 고객의 이름·전화번호·생년월일 등이 담긴 DB엔 세분된 등급이 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돌아다니는 건 '막DB'라 불린다. 쇼핑몰 등에서 쿠폰발행이나 이벤트 참여 목적으로 수집된 건 '아웃바운드DB', 계약자가 보험가입을 희망해 직접 상담신청을 한 경우는 '인바운드DB'라 칭한다. 이렇게 수집한 DB로 고객과 통화해 직접 만나기로 했다면 '퍼미션DB'가 된다. 고객과 몇번 만났는지 횟수가 늘어날수록 퍼미션DB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최근엔 '화재보험DB'라는 용어도 생겼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열리는 입주박람회에서 1~2년 무료 화재보험에 가입해주는 조건으로 확보한 고객 DB다. 최근 법인보험대리점(GA) 소속 설계사들은 쉽고 빠르게 양질의 DB를 모을 수 있다는 이유로 입주박람회 부스 참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람회 주최측이 행사 당일 이벤트를 열어 '화재보험 0년 무상' 쿠폰을 뿌리면 고객이 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게 된다. 이렇게 모인 개인정보가 설계사로 넘어가 '화재보험DB'가 되고 설계사는 부스 참여 명목으로 주최측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식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박람회 주최측이 보험설계사 참여에 호의적이고 행사에 참여하는 고객들도 새로 장만한 내 집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해 대부분 화재보험에 든다"면서 "막DB나 아웃바운드DB보다는 정보 활용가치가 훨씬 높다"고 귀띔했다.

현재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각종 DB를 판매한다는 광고글이 상당수다. 한 사이트에서는 62~69세 고령자DB를 개당 6만5000원에 10개 단위로 판매 중이다. 고객 방문 스케줄이 잡힌 퍼미션DB의 경우 개당 12만원에 10개 단위로 팔린다. 30대 젊은층 DB는 5만원, 화재보험DB는 4만원 수준이다. 일부 GA는 최신 DB를 무료로 제공한다며 설계사 영입 수단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막DB나 아웃바운드DB를 싸게 매입해 고객 연결을 통해 퍼미션을 얻은 후 4~5배 비싼 가격으로 DB를 되파는 업체도 있다. 가끔 전화로 '보험환급지원센터'나 '보험개발원과 협업하는 기관'이라며 접근해오는 곳이 이런 업체다. 이들은 보험을 재설계해준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받고 방문상담까지 퍼미션을 얻은 뒤 다른 설계사에게 해당 정보를 비싸게 팔아넘긴다. 이런 피해사실이 늘어나자 보험개발원은 지난 3월 해당 사례와 관련한 보이스 피싱 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 고객정보를 사고파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일부 설계사들은 고객이 개인정보 '마케팅 활용'이나 '제3자 제공'에 동의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인식하지만 이에 동의했더라도 해당 목적에만 맞게 사용해야 한다. TV나 홈페이지상 이벤트에서 제3자 제공에 동의를 물을 때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제공한다'는 세부 제공처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그 외에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현재 불특정 다수의 설계사에게 판매되고 있는 고객 DB가 판매 전 고객 동의를 일일이 받았을 리 만무하다. 고객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이런 식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에게 정보제공 동의를 받을 때 고객이 세부 사항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도록 글씨를 깨알같이 적거나 제3자 제공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일부 개인정보는 수집·관리·폐기절차에 관한 제대로 된 고지 없이 스팸전화 업체에 판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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