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벚꽃동산' 전도연 "연기에 오랜 갈증…연극, 불안하지만 즐거워"
영화 '집으로 가는 길' 무렵부터 연기 갈증
"나를 잊어버리고 갔네…. 인생이 흘러가 버렸어,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체호프 희곡선, 을유문화사)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희곡 '벚꽃동산'에서 늙은 집사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다. 피르스가 평생을 모신 주인 집안은 몰락했다. 주인 가족은 조상 대대로 소유했던 영지를 과거 소작농의 아들에게 뺏기고 집을 떠난다. 견마지로를 다한 집사 피르스의 존재도 잊은 채…. 집안에 홀로 남은 피르스가 삶의 허망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독백을 읊조리며 연극 벚꽃동산은 막을 내린다.
배우 전도연이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읽으며 마음에 많이 남았다고 한 대목이다.
전도연은 11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한 인터뷰에서 "희곡을 읽었을 때 인상 깊었던 인물은 나이 많은 집사였다. 다 떠났을 때 그 나이 많은 집사가 그 집의 문을 닫는데 그 인물이 굉장히 마음에 남았다. 나이 든 집사는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 집이 죽어가는 것처럼 집사도 죽어간다."
전도연은 오는 7월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하는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한다.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체호프의 희곡을 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했다.
체호프의 원작은 1861년 농노해방령 이후 귀족 사회가 무너져가던 19세기 말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스톤의 벚꽃동산에서는 원작의 귀족이 현대 한국 사회의 재벌로, 원작에서 영지의 새 주인이 되는 소작농의 아들은 재벌 집안 운전기사의 아들로 바뀐다. 전도연은 재벌 집안의 딸 송도영으로 출연한다. 운전기사의 아들 황두식 역은 박해수가 맡았다.
스톤은 고전 작품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전도연은 "벚꽃동산이라는 제목만 같을 뿐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마지막 장면도 원작과 차이를 보인다. 피르스처럼 나이 많은 인물이 허무한 독백을 읊조리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독백이 끝난 뒤 집의 새로운 주인 황두식이 등장해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며 집을 다 부수라고 외치며 극이 끝난다.
전도연은 "새로운 시대가 무엇인지 배우들이 사이먼 연출에게 물었는데 사이먼이 답을 주지 않았다. 사이먼도 모를 것 같다. 새 시대에 대한 생각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지금 우리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공기도 좀 더 좋아서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벚꽃동산은 전도연이 27년 만에 출연하는 연극이다. 그는 1997년 '리타 길들이기'로 딱 한 번 연극 무대에 섰다. 전도연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 출연했던 2013년 무렵부터 오랜 시간 동안 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장르적으로 점점 갇히고,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 갈증을 좀 많이 느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좀 오래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LG아트센터의 제안으로 스톤이 연출한 연극 '메디아'를 영상으로 봤다. 메디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녀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배신당한 후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인물이다. 스톤은 의사인 남편의 불륜에 끝내 이성을 잃고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는 여성의 이야기로 치환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도연은 "내 안에 내재해 있는 걸 뭔가를 쏟아내고 싶었는데 스톤의 메디아에 출연한 여배우의 연기를 보는 순간 그걸 느꼈던 것 같다. 메디아에 출연한 여배우가 너무 부러웠다. 또 벚꽃동산 희곡이 재미없었는데 스톤은 이 고전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렇게 전도연은 27년 만에 연극 출연을 결심했다. 벚꽃동산은 지난 4일 개막해 7회 공연을 마쳤다. 전도연은 익숙하지 않은 연극 무대에 적응해가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 공연 끝날 때까지 적응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무대가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익숙하지 않아서 불안하고 긴장감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조금씩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배우들하고 함께 연기할 때는 너무 즐겁다. 아직까지 무대를 즐기고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껏 뭔가 풀어놓고 연기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좀 더 폭넓은 선택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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