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슈 된 바이오”… 中 빈자리 메울 ‘藥전쟁’ 점화
바이오산업에 불어닥친 미·중 갈등 여파를 고스란히 보여준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이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6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바이오의 안보화’ 분위기 속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개막일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4성 장군(대장) 출신인 예비역 해군 제독이 전세계 바이오 기업 관계자들이 집결한 국제행사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모습은 의아함을 자아냈다. 주인공은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윌리엄 맥레이븐 텍사스 대학교 전 총장이었다. 그는 “다양한 세계적인 위협에 직면한 이때 견고한 생명공학 산업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와 동맹국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바이오USA 행사를 주관하는 미국 바이오협회(BIO) 존 크롤리 대표도 행사 마지막 날 그와 함께 메인 무대에 섰다. 이들은 지정학, 국가 안보 전략에서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미국이 국가와 국제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공학 역량을 강화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미 인사들이 공개석상에서 ‘국제사회 보호’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꺼내 들었지만 업계의 시선은 다르다. 미래 고부가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산업의 가치사슬을 중국에 넘기면 안 된다는 속내에 더 주목한다. 현재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생물보안법’은 바이오 기업에 중국 위탁임상개발생산 기업(CRDMO) 우시앱텍·우시바이오로직스 등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미 바이오 제약사들은 이들 기업과 2032년 1월 1일까지 계약을 종료해야 한다. ‘기피 기업’으로 낙인찍힌 우시앱텍은 BIO에서 탈퇴했고 두 기업 모두 올해 바이오USA 행사에 불참했다.
법안에서 정한 계약 종료 시점까지 8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위탁개발생산(CDMO) 업계에서는 ‘촉박한 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바이오USA 현장에서 만난 김경진 에스티팜 대표는 “제조처와 관련한 규제 문서 내용을 모두 바꿔 미 식품의약국(FDA)에 승인을 받으려면 최소 2~5년이 걸린다”며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지만 미리 대비해놔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세컨드 서플라이’ 확보 차원에서 이미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기업 외에 국가·기관이 경쟁하듯 부스를 마련해 참가한 점도 앞선 바이오USA 때와 다른 포인트로 꼽힌다. 올해 행사에는 26개 국가(EU 포함), 미국의 주요 주·시 정부 30여곳이 직접 부스를 마련해 참가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이에 대해 “미국이 제약·바이오 산업을 주도하자 각국이 자국 기업들을 각자도생하게 놔두면 위험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동유럽은 글로벌 임상과 제네릭(복제 의약품) 생산기지로 포인트를 잡았고, 서유럽은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풍부함을 무기로 투자와 기업 유치를 하려는 의도가 보였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내세우며 중국을 대체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글로벌 임상·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중국이 배제될 경우 신약 출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시앱텍은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 20개사가 고객사에 포함돼 매출 비중의 40%를 차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에서 임상 개발 중인 혁신 신약 후보물질(화학·바이오)은 2017년 373개에서 2022년 1760개로 증가했고, 이중 약 4분의 1은 중국에 설립된 회사들에 의해 개발됐다.
미 정부 인사들은 지정학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국 CDMO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비슷한 비용 효율성과 숙련된 인력을 가진 인도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로버트 칼리프 FDA 국장은 지난 5일 바이오USA 무대에서 “의약품의 온쇼어링(자국 생산)이 중요하며 미국과 지리·정치적으로 가까운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도에 대한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인도 정부 역시 그들의 장기적인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글·사진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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