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문건 속 “北송금 주가조작용”…1심, 이 주장 배척했다

허정원 2024. 6.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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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이 이르면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 제3자 뇌물 등 혐의로 추가 기소하기로 하면서 검찰과 민주당 측 법정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벌써부터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북한에 대납한 “800만 달러는 이 대표 방북비용이 아닌 ‘주가조작용’”이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이미 이같은 이 전 부지사 측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로지 주가상승 위해 해외투자자까지 기망할 리 없어”


경기도가 추진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보낼 묘목장을 찾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왼쪽 두 번째)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맨 왼쪽). 독자제공.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이 전 부지사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는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착수 계기와 관련 “쌍방울은 2018년 12월 이전 북한에 내의를 제공하거나 평양에 매장을 개설하는 정도의 사업을 계획한 것 외에 북한 자원개발 등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새로운 대북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고인(이 전 부지사)으로부터 스마트팜 비용 대납 관련 제안을 받고 이를 수락함으로써 대북사업을 비로소 추진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전 부지사는 2018년 10월 방북해 김성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을 만나 ‘남북공동운영 시범농장 적극 추진 요청’을 받고 귀국한 직후 “경기도는 황해도 지역 1개 농장을 농림복합형(스마트팜) 시범농장으로 지정·개선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며 이를 경기도 사업으로 발표했다. 재판부는 대북사업 경험이 전무했던 쌍방울이 ‘협동농장 지원’(미화 300만~500만불 단계적 지원)을 골자로 하는 북남협력 사업제안서를 이 전 부지사 발표 두 달 뒤인 같은 해 12월에야 작성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부탁으로 스마트팜 비용을 대신 납부하는 취지로 기재한 것이 아니라면 협동농장과 관련 어떤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쌍방울이 경기도가 추진하려했던 항목을 별도로 인도적 지원이란 표제 하에 기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2018년 4월 대북 수혜주인 나노스의 주가상승을 경험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를 계기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2018년 12월까지 대북사업을 위한 검토나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이 같은 정황이 없다는 것도 이유로 들었다. 쌍방울은 경기도 없는 대북사업을 구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후 김 전 회장이 2019년 1~7월 미국계 헤지펀드, 홍콩, 일본 등으로부터 1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투자자들에게 ‘경기도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한 점에도 주목했다. “국내에서 기업집단을 운영하는 CEO가 오로지 주가상승을 위해 해외투자자들을 기망하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헤지펀드와 투자를 중개한 김모씨의 회의록에는 김 전 회장이 “경기도 부지사는 (쌍방울) 그룹의 리더로 봐도 된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野 힘실은 국정원 문건도 신빙성 부인…“리호남 단독 공작일수도”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이성윤(왼쪽 두 번째), 박균택(오른쪽 두 번째) 의원 등이 '쌍방울의 대북사업 빙자 주가조작 정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북송금 의혹 사건이 쌍방울의 자체 주가조작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뉴시스

법원은 민주당이 ‘쌍방울 주가조작용 송금’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국정원 문건에 대해서도 신빙성을 부인했다. 2020년 1월 생성된 국정원 문건은 대남공작원 리호남이 대북 브로커 출신 제보자 김모씨에게 “대북사업으로 쌍방울 계열사 주가를 띄워주는 대가로 수익금 일부를 받기로 했다”, “쌍방울이 (주가조작으로 얻은) 수익금을 1주일에 50억원씩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 등이 “국정원 문건 어디에도 주가조작용이었지 이재명 대표의 방북 비용이라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문건 중 하나다.

그러나 법원은 ▶주가조작 언급은 제보자 진술일 뿐 수익금 조성 방법 등이 없이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국정원이 이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불분명한 점 ▶쌍방울이 실제 나노스 주식을 매각해 이익 실현을 시도하는 등 리호남 계획에 참여했다고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설령 문건 내용처럼 리호남이 쌍방울의 주가상승 이익을 노렸다고 하더라도 리호남의 대남공작금 마련을 위한 자체 대남공작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봤다.


檢 “주가조작 주장할수록 경기도 관여 짙어져…불가분 관계”


2019년 1월17일 이화영(오른쪽 두번째)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송명철(가운데) 북한 조선아태위 부실장, 김성태(왼쪽 두번째) 전 쌍방울그룹 회장, 안부수(왼쪽 첫번째)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중국 심양의 캠핀스키 호텔 회의실만찬장에서 양주를 마시고 있다. 독자 제공.
검찰은 또다른 국정원 문건의 해석에 대해서도 반박하는 입장이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을 통해 북한 실세 김성혜에게 접촉 중이었던 국정원은 안 회장이 쌍방울 주가조작에 동참해 나노스 주가가 수직상승했다는 점을 우려하며 2019년 2월 “안 회장과의 관계를 종결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생성한다.

이 문건에도 ‘방북비용’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는 야당 측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김 회장이 이 대표 방북용 300만 달러를 북측에 송금한 건 2019년 7월~2020년 1월”이라며 “방북비용 송금 이전 생성된 문건에 관련 내용이 들어있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 국정원 문건의 생성자는 안부수 회장과 이 전 부지사를 연결해준 당시 국정원 고위 관계자로 이 전 부지사의 먼 친척이었다.

검찰은 “쌍방울에게 주가부양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위해 공신력 있는 주체인 경기도의 사업참여 보증이 필수”라며 “불가분의 관계라 주가조작을 주장하면 할수록 경기도 관여설이 짙어진다”는 입장이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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