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尹 향한 화해 제스처인가…연일 '헌법 84조' 띄운 속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1심 유죄 판결을 계기로 연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직격하고 있다. 여권에선 한 전 위원장이 이 과정에서 ‘헌법 84조’를 언급한 게 전략적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7일 이 대표의 측근인 이 전 부지사가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자 다음 날인 8일 “(헌법 84조는 민주당이) 재판을 지연시켜 형사 피고인을 대통령 만들려는 상황에서는 국가적 이슈가 될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직 중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선 해석이 명확하지만, 재직 전에 수사나 재판이 시작된 범죄에 대해선 헌법학계에서도 해석이 갈리는 상황이다.
한 전 위원장은 9일엔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집행유예만 확정되어도 대통령직을 상실해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좀 더 명확히 썼고, 10일엔 “공범들이 관련 재판들에서 줄줄이 무거운 실형으로 유죄 판결받고 있으니 자기도 무죄 못 받을 거 잘 알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 당선을 감옥 가지 않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는 것”이라고 적었다.
살라미 방식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며 ‘피고인 이재명’이 불러올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킨 한 전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여권에선 크게 두 갈래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잠재적 대권 경쟁자이기도 한 이 대표를 향한 견제다. 여권 인사에 따르면 한 전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 사석에서 “이 대표는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 아니냐”며 “(각종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는 미국 법체계상 당선돼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이 대표는 우리 법체계상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랜 측근으로서 윤 대통령을 보호하는 논리 구조를 짰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친한계 인사는 “헌법 84조가 현직 대통령이 사법권의 방해를 받지 않고 국정운영을 수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그렇게 보면 현재 윤 대통령을 향한 민주당의 탄핵소추 추진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모두 명분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그러면서 “정치적 목적만으로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는 건 이 조항과 정면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공격할 때는 마치 헌법 84조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이재명 대표가 공격받을 땐 헌법 84조로 방어하는 모양새가 된다면 그 자체로 내로남불”이라며 “법률가인 한 전 위원장이 이런 틈을 파고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현재 벌어지는 헌법 84조 논쟁과 관련해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한 위원장의 헌법 84조 논쟁이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을 향한 일종의 ‘화해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7월 25일로 예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기 위해선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벌어지는 거리를 좁히는 게 필수라는 의견이 여권의 중론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또한 한 전 위원장과의 관계 개선을 원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전 위원장과 언제든지 식사도 하고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 핵심 의원은 “오랜 인연을 가진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지금 같은 갈등 상황에 놓인 게 오히려 어색한 일”이라고 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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