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여름 나는 법

2024. 6. 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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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재방송되는 KBS 인간극장 '지리산 두 할머니의 약속'을 봤습니다.

두 할머니는 전남 구례 추동마을에 삽니다.

두 할머니는 각기 열아홉,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한집안으로 시집온 동서지간입니다.

자녀들은 장성해 외지로 나갔고 남편들도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보니 두 할머니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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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재방송되는 KBS 인간극장 ‘지리산 두 할머니의 약속’을 봤습니다. 두 할머니는 전남 구례 추동마을에 삽니다. 고작 네 채의 집만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에 이상엽(83) 최삼엽(75) 할머니가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두 할머니는 각기 열아홉,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한집안으로 시집온 동서지간입니다.

자녀들은 장성해 외지로 나갔고 남편들도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보니 두 할머니만 남았습니다. 56년 세월을 함께했으니 이젠 친자매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밭일도 병원이나 미용실 가는 일도 당연히(?) 함께합니다. 온종일 함께 삽니다. 동생 할머니가 말합니다. “언니가 자꾸 아프네. 내가 먼저 가야 할 텐데.” 혼자 남을 두려움에서 온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남는 게 두렵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혼자가 두렵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제 세대는 ‘혼자’가 낯선 시대를 살았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저,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기에 ‘너 혼자라 외롭겠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외로움을 모르고 컸습니다. 늘 몸을 부대끼며 놀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한데 뒤엉켜 뛰어놀았습니다. 남자애 여자애가 뒤섞여 ‘다방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도 하고 심지어 ‘말타기’를 하면 말이 된 여자애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 등판에 올라타기도 했지요.

‘기마전’은 어린 우리에게는 세계대전처럼 여겨졌습니다. 머리칼을 잡고 끌어당기고 밀치면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온몸이 땀 범벅 흙 범벅이었습니다. 그렇게 놀고는 서로의 몸에 땀을 비비면서 어깨동무를 한 채로 친구 집에 갔습니다. 그 집 마당에 펌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통에 물을 잔뜩 받아놓고 팬티 바람으로 서로에게 물을 끼얹으면서 안마당, 뒷마당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시원한 펌프 물이 땀을 씻겨 주었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모두 당신의 아들이라는 듯이 한 명씩 정성껏 씻겨서 저녁까지 먹여 보내주셨습니다. 그땐 외로울 틈이 없었습니다.

여름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름은 그때 여름과 다릅니다. 다른 이가 옆에 오면 끈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떨어져!”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얼음 음료를 마시면서 혼자 유유자적하길 원합니다. 매우 쾌적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외로움이란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누가 와서 뒤에서 갑자기 끌어안으며 “잘 있었어? 친구!”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들과 손을 잡고 엉켜 뒹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오래전 추억 속에만 있습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이 그리운 때가 됐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살길 원하셨습니다. 최고로 좋은 환경인 에덴에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주셨습니다. 그 순간 에덴은 사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앞부분은 이렇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서로를 불러줄 때 비로소 상대가 우리에게 꽃이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두 할머니의 이야기가 방영된 것은 2011년도입니다. 지금쯤은 두 분 다 세상을 떠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랑하며 살날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도 떠날 것이니까요. 올여름은 두 손 꼭 잡고 지났으면 합니다.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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