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실 눈치만 본 권익위의 맹탕 ‘명품백’ 결론
“제재 규정 없다”며 실체 판단도 없이 종결 처리
시간 끌다 허무한 종결…청탁금지법 전면 개정을
국민권익위원회가 그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 없이 종결 처리한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권익위의 판단은 지난해 12월 참여연대가 김 여사와 배우자인 윤 대통령, 공여자인 최재영 목사가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신고한 지 반 년 만에 나왔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 내놓은 결론은 권익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맹탕이었다.
권익위는 김 여사의 경우 “청탁금지법에 배우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종결 처리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사건의 실체와 경위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고 법적 미비만을 내세워 빠져나간 모양새다. 윤 대통령과 최 목사에 대해선 “직무관련성과 대통령기록물 해당 여부를 논의한 결과 종결했다”며 “이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14조(1항 4,6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내용이 언론에 공개돼 새 증거가 없는 경우’나 ‘법 위반행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다. 대가성과 대통령기록물 해당 여부는 윤 대통령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어서 처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어떤 논리와 근거가 제시됐는지 심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불쑥 던졌다.
앞서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300만원 상당의 명품백을 건넨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공개돼 많은 국민이 이를 지켜봤었다. 지난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였고, 검찰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소한 이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궁금증에 대해서는 권익위가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법적인 미비점이 문제라면 어떻게 고치자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 반부패 총괄기관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권익위는 대통령 부부가 순방을 위해 출국한 뒤, 오후 5시30분쯤 기자단에 슬그머니 브리핑 개최 사실을 통지했다. 배경 설명이나 질의응답도 없이 410자 분량의 짧은 브리핑만 하곤 사라졌다. 결정을 미루고, 결정 후 발표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대통령실의 눈치를 본 것이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결국 사건의 실체와 책임 여부는 검찰의 수사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렸다는 검찰마저 권익위 수준의 결론을 낸다면 특검의 명분만 쌓아주게 될 뿐이다.
권익위의 부실, 맹탕 결론과 별개로 이번 사건을 통해 청탁금지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그간 옷 로비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뇌물 사건에서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는 통로로 부인과 가족이 이용된 사례가 많았다. 이를 막고자 만든 법에 금지 조항만 있고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다면 합법적으로 금품 제공 통로를 보장해 주는 것 아닌가. 이런 어이없는 법적 허점은 하루 속히 정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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