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바보야, 문제는 킬러문항이 아니라 ‘수능 구조’ 그 자체야

이도경 2024. 6. 1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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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송파구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이번 모의평가는 지난해 수능 이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상위권 변별용 ‘킬러’ 예견된 수순
교육부 ‘귀에 걸면 귀걸이’식 기준
준킬러 등 출제 전략 더 영악해져
적응 마친 사교육은 표정 관리 중
공정수능 말장난… 새 방식 찾아야

의대 증원이 확정된 이후 첫 공식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끝났습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지난 4일 치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6월 모의평가의 난이도를 ‘불수능’을 뛰어넘어 ‘용암수능’으로 불렸던 지난해 수능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수험생들도 아우성이죠.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수능을 어렵게 내겠다’는 의도를 전혀 숨기지 않았습니다.

예견됐던 일입니다. 입시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는 의대 모집인원이 1500명 늘어났으니까요. 서울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학생, 연구중심 대학 출신의 실력파 n수생 유입이 예상됩니다. 의대 입시가 망가지면 서울권 주요 대학의 입시도 줄줄이 엉망이 됩니다. 올해는 상위권 변별력 확보가 어느 해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최상위권과 차상위권을 가르는 출제가 평가원의 제1 미션입니다. 먼저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해야 합니다. 1등급은 4% 남짓. 100명을 한 줄로 세우면 앞쪽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구분하는 작업입니다. 맨 앞 네 명의 우열 역시 확실히 가려야 합니다. 5지 선다형 문항을 기계적으로 풀도록 철저히 훈련해 왔습니다. 우열을 가리는 게 간단치 않습니다.

‘킬러문항’의 등장은 필연이었습니다. 킬러문항은 사교육 감소를 위해 EBS 70% 연계가 시작된 이후 회자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정부가 영어 사교육 잡는다며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한 뒤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상위권 변별력 확보. 세 과목으로 변별해오다 수학 두 과목으로 해야 하니 난도 상승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국어가 어려워졌습니다. 킬러문항의 대명사 격인 2019학년도 ‘국어 31번’의 등장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킬러문항은 어떤 불순한 세력의 기획이 아니라 수능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섣불리 건드려 문제를 곪게 했을 뿐입니다. EBS 연계든 영어 절대평가든 그 밖에 수능을 바꾸겠다며 나온 방안들은 어김없이 상위권 변별 기능이란 ‘지상 과제’에 막혀 목표 달성은커녕 부작용만 양산했습니다. 심지어 영어 사교육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지난해 여름 터진 킬러문항 논란도 비슷한 궤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호령 이전 교육부에게 킬러문항은 단지 용어의 문제였습니다. 상위권 변별 기능을 위한 문항을 교육부는 초고난도 문항, 입시 현장은 킬러문항으로 부를 뿐이었죠. 교육부는 초고난도 문항 출제에 대해 상위권 변별을 위한 ‘필요악’ 정도로 인식하는 듯했습니다.

대통령의 공개 질책 뒤 교육부는 부랴부랴 킬러문항에 대한 정의부터 내렸습니다.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이죠. 단 한 번도 심지어 법정에서도 부인했던 ‘교육과정 밖 출제’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은 그렇다 쳐도, 킬러문항 정의가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모호한 점은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란 말입니다. 수능 출제 시 고려하는 교육과정은 그 자체가 모호합니다. 예컨대 지난해 수능 수학 22번을 출제하고 평가원이 밝힌 교육과정 근거는 단 두 문장이었습니다. ‘연속함수 성질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 함수의 그래프 개형을 그릴 수 있다’입니다. 지난해 국어 24번의 경우 ‘작품을 공감적, 비판적,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상호 소통한다’로 더 단출합니다.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 익히고’ ‘반복적 훈련한 학생’이란 대목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수험생이 정답을 골랐는데 그 역량이 사교육 때문인지 학교 수업 덕인지 자기주도학습의 결과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반복적 훈련은 학습의 기본이죠. 이런 날림 기준을 스스로 세운 뒤 ‘킬러문항 감별사’가 된 교육부는 대통령 덕에 킬러문항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과연 공정 수능으로 거듭났을까요. 단지 상위권 변별을 위한 출제 전략이 영악해졌을 뿐입니다. 전략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먼저 킬러문항보다 약간 쉬운 준킬러문항을 늘려 곳곳에 배치하는 겁니다. 갑자기 까다로운 문항이 튀어나오는 식입니다. 과거 킬러문항은 나오는 패턴이 거의 일정했습니다. 일반 문항을 풀고 도전해보라는 식이었습니다.

다음은 ‘매력적 오답 전략’(정답과 헷갈릴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지문보다 선택지가 까다로워졌습니다. 시간 배분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마지막은 신(新)유형 킬러문항입니다. 지난해 수학 22번이 좋은 예입니다. 당시 수험생들이 ‘이게 킬러가 아니면 뭐가 킬러인가’라며 목소리 높였지만, 교육부는 킬러문항 감별 권한으로 간단히 묵살해버렸습니다.

사교육은 적응을 마친 모습입니다. 지난해 수능 뒤 맞춤형 상품이 봇물을 이뤘죠. 의대 증원으로 상위권 변별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출제 당국의 처지와 맞물려 지난해 킬러문항 파동은 사교육에 날개를 달아줬습니다. 사교육은 킬러문항이 없다는 ‘립 서비스’를 날리며 표정 관리 중입니다. 공교육이 적응을 했는지는 회의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죠. 이런 상황에서 공정 수능은 말장난일 뿐입니다.

수능이 도입된 지 31년 흘렀습니다. 100만명에 육박하던 수험생을 저비용으로 편하게 줄 세우려고 만들어져 한 세대를 이어왔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한해 20만명 남짓으로 태어납니다. 이들을 5지 선다형으로 줄 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킬러문항의 등장은 수능의 유효기간이 종료됐으니 이제 다른 방식을 찾아보란 시그널 아닐지요. 문제의 본질은 킬러문항이 아니라 수능 그 자체에 있으니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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