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도시 재생 전문가

2024. 6. 1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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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고속도로 터널 입구에 시장 훈시를 새겼다가 이틀 만에 철수한 일이 있었다.

'꾀·끼·깡·꼴·끈' 다섯 글자였는데 '귀신같은 느낌을 준다' '읽다가 사고 나겠다'라는 여론이 일자 폐기한 것이다.

용산은 남산과 한강을 잇는 서울 한복판의 중심지였음에도 일본인 주택 단지와 미 8군 주둔지라는 역사의 질곡 속에 가려져 낙후된 주거지였다.

도시 재생도 결국 혁신적 발상력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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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성균관대 겸임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부산에서 고속도로 터널 입구에 시장 훈시를 새겼다가 이틀 만에 철수한 일이 있었다. ‘꾀·끼·깡·꼴·끈’ 다섯 글자였는데 ‘귀신같은 느낌을 준다’ ‘읽다가 사고 나겠다’라는 여론이 일자 폐기한 것이다. 윗사람의 지시 사항은 수첩에나 메모할 일이다. 누군가 이걸 운전자 시야가 닿는 곳에 떡하니 새겨 전파하겠다는 졸렬한 발상을 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뉴욕이나 도쿄를 드나드는 시대적 감수성을 감안하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조치다. 인구 절벽의 시대, 이 해프닝은 공공 디자인적 측면 말고도 도시 재생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좋은 계기다.

이제 인구 감소 문제는 숙명적이다. 도시는 융합 콘텐츠로 새롭게 태어나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공간으로 구성돼야 한다.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은 인구가 썰물처럼 들어오고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유동성에 초점을 둔 관점이다. 즉 그 지역에서 먹고 사는 정주 인구가 아닌 그 지역을 방문하는 관계 인구를 유입시켜 도시를 살려보자는 개념이다. 용산은 남산과 한강을 잇는 서울 한복판의 중심지였음에도 일본인 주택 단지와 미 8군 주둔지라는 역사의 질곡 속에 가려져 낙후된 주거지였다. 기껏해야 코레일을 타거나 전자제품을 사려고 들르는 경유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이 일대가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용산역사와 아이파크몰, CGV와 드래곤시티가 중심부를 이루면서 주변으로 몰려든 기업들의 사옥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웰컴금융그룹, 아모레퍼시픽, 하이브, LG유플러스 등에 근무하는 비즈니스맨들은 내장탕과 곰탕으로 유명한 평양집이나 능동미나리에 들러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들른 뒤 용산공원이나 전쟁박물관 같은 공원에서 산책한다. 저녁이면 이곳의 맛집과 술집을 찾은 지인들과 뒤섞인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공간에 대한 디지털 세대의 욕구는 청년과 중년, 회사원과 대학생을 가리지 않는다.

지방으로 가보자. 최근 통계에 따르면 경포대, 광안리, 서귀포 중문 등 주요 바닷가 10여곳 중 20·30대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양양 죽도해변(45.9%)이다. 양양의 고령 인구 비율이 전국 평균 17.6%의 2배인 32%(BC카드, 2022년 6월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곳에 타지의 젊은이들이 몰릴 만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핑 해변과 비치 파티로 유명한 ‘서퍼비치’다. 서퍼비치는 양양 주변을 하와이의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지방 소멸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서퍼비치와 같은 시그니처 스토어, 해당 지역의 명망가와 전문적인 도시 재생 전문가,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우호적 관계를 꼽는다. 하지만 여기에 빠진 것이 있다. 이들이 뽑은 분석 데이터와 종합적 의견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콘텐츠를 구상할 아이디어 플래너다. 한국민속촌을 가보신 분들은 알 것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사당패나 외줄 타기 공연장이 아니다. 점집인데 보통의 점집이 아니고 트렌드와 아이디어를 결합한 최초의 점집이다. 이곳의 역술가는 관상이나 주역으로 손님의 운명을 점치지 않는다. 상대의 전화번호를 따내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맨이다. 구경꾼들은 사진을 찍어 세상에 퍼 나르며 부지불식간에 그곳의 홍보맨이 된다. 누군가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활용해서 도파민의 시대에 걸맞은 맥락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사실 강원도 해변에 멋진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이국적 풍광을 끌어들인 로컬크리에이터 박준규 대표도 광고회사 출신이었다. 기획력과 창의성으로 무장된 발상가를 네트워킹 그룹에 포진시켜라. 도시 재생도 결국 혁신적 발상력의 문제일 것이다.

김시래(성균관대 겸임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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