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중국이 팡둥라이에 열광하는 이유

송세영 2024. 6. 1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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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거나 출근하기 싫으면 언제든 10일간 쉴 수 있는 기업이 있다.

팡둥라이가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면에는 중국 기업의 열악한 현실이 있다.

중국 노동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 50대 대기업 직원의 78.9%가 압박감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59.4%는 초조함, 38.6%는 우울증을 경험했다.

팡둥라이식 기업문화가 바람직하다면 중국 정부가 법과 제도를 보완해 확산과 정착을 지원해야 하지만, 그럴 조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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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우울하거나 출근하기 싫으면 언제든 10일간 쉴 수 있는 기업이 있다. 중국 허난성 쉬창에 본사를 둔 유통업체 팡둥라이다. 이 회사는 직원에게 1년 40일의 연차휴가를 제공하지만, 지난 3월 기분이 안 좋을 때 쓸 수 있는 ‘불행휴가’를 새로 도입했다.

평소 일을 많이 시키는 것도 아니다. 팡둥라이 직원은 총 7000여명인데 하루 7~8시간씩 주 40시간만 일한다. 시간 외 초과근무는 금지다. ‘초과근무는 비윤리적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게 이 회사 경영철학이다. 직원들의 휴식을 위해 모든 매장은 매주 화요일 문을 닫는다. 급여도 넉넉하게 지급한다. 수익의 90%를 성과급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중소도시인 이곳 매장 직원의 평균 급여가 상하이 같은 대도시 근로자 평균보다 많다. 중학교를 중퇴한 창업주 위둥라이가 1995년 3월 쉬창시에서 형과 직원에게 빌린 돈 6만 위안(약 1137만원)으로 창업한 담배·주류판매점이 팡둥라이의 모태다. 현재 쉬창시와 신샹시, 허난성의 2개 도시에서만 13개 매장을 운영하는데 지난해 전체 매출은 107억 위안(2조280억원)이었다. “2000만 위안(38억원)만 벌고 싶었는데 1억4000만 위안(265억원)을 벌었다”는 위둥라이의 발언은 지난 3월 큰 화제가 됐다.

팡둥라이의 고객서비스는 섬세하고 진정성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객이 쇼핑하는 동안 반려동물을 대신 돌봐준다. 수유실과 화장실은 특급호텔 수준이다. 상품별 공급가격과 마진을 공개하고 과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은 하지 않는다. 이곳 매장을 찾은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위둥라이의 말이 진심임을 느낀다. 중국인들은 고객제일주의와 직원제일주의를 함께 추구하는 팡둥라이의 스토리에 열광한다. 올해 춘제(춘절) 연휴에 3일간 팡둥라이 3개 매장을 방문한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쉬창과 신샹의 최고 관광명소가 팡둥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도 “팡둥라이는 중국 소매산업에서 신과 같은 존재”라고 극찬했다. 유통대기업 다샹그룹의 뉴강 회장도 “팡둥라이만큼 좋은 기업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했고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팡둥라이는 다른 기업의 부족한 점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평했다.

팡둥라이가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면에는 중국 기업의 열악한 현실이 있다. 최근 논란을 빚은 포털 바이두와 인터넷 쇼핑몰 징둥이 대표적이다. 바이두의 취징 부사장은 “주말에 쉴 생각하지 말고 24시간 대기하라”는 등의 갑질 영상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사임했다. 중국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간 일한다는 ‘996’ 관행이 심각한 문제인데 취 부사장이 이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징둥은 사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직원을 갑자기 해고하고 출근 시간 점검과 점심시간 축소에 나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징둥의 류창둥 회장은 “실적도 나쁘고 노력도 하지 않는 직원은 용납할 수 없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축출할 것”이라며 해고를 정당화했다.

중국 노동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 50대 대기업 직원의 78.9%가 압박감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59.4%는 초조함, 38.6%는 우울증을 경험했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런 수준이니 팡둥라이 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팡둥라이식 기업문화가 바람직하다면 중국 정부가 법과 제도를 보완해 확산과 정착을 지원해야 하지만, 그럴 조짐도 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지만, 기업들의 행태는 그 대척점에 있는 신자유주의에 가깝다. 이대로 둔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공동부유’는 빈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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