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귀 기울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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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는 더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남아 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시든 꽃이 다시 피어나듯 사라진 소리들이 되살아나 마음속에 잔잔히 흐른다.
귀 기울이면 건넛방에서부터 대청마루를 지나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귀 기울이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뻥튀기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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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는 더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남아 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시든 꽃이 다시 피어나듯 사라진 소리들이 되살아나 마음속에 잔잔히 흐른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귀 기울이면 건넛방에서부터 대청마루를 지나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격자무늬 창살에 붙인 창호지에는 할머니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 할머니가 방망이를 다듬잇돌에 내려칠 때마다 식구들의 구김진 옷자락은 곱게 펴졌을 것이다. 나는 또닥또닥 들려오는 소리가 정다워 마루에 걸터앉아 가만히 듣고는 했다.
귀 기울이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뻥튀기 소리도 들린다. 동네 어귀에 뻥튀기 기계가 들어서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뻥튀기 아저씨가 옥수수를 기계에 넣고 돌리면, 이내 ‘뻥’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작은 조약돌처럼 부풀어 오른 뻥튀기가 데굴데굴 구르며 쏟아져 나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에 어깨를 움츠리던 순간과 뻥튀기 아저씨가 ‘뻥이요!’ 외치는 소리, 사람들의 탄성은 재미난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귀 기울이면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며, ‘넌 깍두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흙먼지 일으키며 땅을 차고 고무줄을 넘으며 부르던 노랫말, 크고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을 듯 간지럽다. 놀고 공부하고 쑥쑥 크는 것이 할 일의 전부였던 참으로 가벼운 시절이었다.
밥 먹어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하나둘 흩어지던 친구들의 뒷모습을 끝으로 감았던 눈을 뜨면 현재 머무는 시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장면, 주위를 감싸던 정겨운 소리가 어느 날 전부 사라졌다.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소리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꿈결 같은 추억이 애틋해서 다시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본다. 마음의 강에 그리움이 흐른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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