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민희진 사건과 언더도그마

이상언 2024. 6. 1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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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다윗과 골리앗 싸움.’ 대표적 언론 클리셰(상투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갈등, 개발업체와 주민의 소송전 등에 등장한다. 다윗은 선량한 약자, 골리앗은 힘센 악당을 상징한다.

‘무려 3m에 가까운 거구 골리앗에게는 갑옷으로 덮히지 않는 얼굴 부분만이 아킬레스의 발꿈치처럼 유일하게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약점이었다. 소년 다윗은 약점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급소에 물맷돌로 정통으로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박진호 목사의 글(기독일보 칼럼)이다. 물맷돌은 중간에 돌을 넣고 손으로 돌리다가 한쪽 끝을 놓아 돌이 빠르게 날아가게 만든 가죽이나 천을 말한다.

「 사태 핵심은 회사 찬탈 시도 여부
법원 “독립적 지배 방법 모색 분명”
언더독 외양에 시비 묻히지 않아야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은 표정에 맨투맨 셔츠, 야구 모자 차림으로 생방송 인터뷰에 나선 민 대표는 대기업 하이브에 맞서 싸우는 혈혈단신의 여성으로 비쳤다. 연합뉴스

박 목사는 ‘다윗은 양을 치면서 물맷돌에 프로급 선수가 됐다. 요즘으로 치면 올림픽 양궁이나 사격 금메달리스트의 솜씨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맹수를 단방에 맞히는 솜씨라면 인간의 급소는 너무나 쉽게 맞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윗이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선량한지는 보기 나름이다. 전쟁에서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다윗의 돌맷돌은 정의고, 골리앗의 창은 불의라고 단정할 수 없다.

체구가 작고 어린 다윗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언더독(under dog) 효과’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도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싸움의 상대가 대기업 하이브였다. 민 대표는 혈혈단신의 여성으로 비쳤다. 5억원 넘는 연봉을 받는 CEO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은 표정에 맨투맨 셔츠와 야구 모자 차림으로 생방송 인터뷰에 나왔다.

“언더독의 사전적 의미는 ‘약점이 많아 패배가 예상되는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열정과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담기면 언더독은 날개를 달게 되며 사람들에게 공감과 긍정 효과를 주게 된다.” 마케팅 전문가 여준상 동국대 교수가 잡지(동아비즈니스리뷰)에 쓴 글이다. 민 대표는 인터뷰에서 열정과 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연출한 것이든, 몸에 밴 감에 따른 것이든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K팝 흥행사답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지난 5월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민 대표는 두 번의 기자회견을 통해 사람들에게 '언더독 스토리'를 각인시키며 공감과 긍정 효과를 일으켰다. 최기웅 기자.


강준만 교수는 책 『생각의 문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언더독 전략’이 잘 먹히는 나라에 속한다. 선거에서건, 일상적 삶에서건 한국인들은 ‘언더독 스토리’ 즉 낮은 곳에서 오랜 세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은 후에 승리하는 스토리를 사랑한다. 고난과 시련으로 말하자면,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또 있으랴.”

언더독 효과는 인간 심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언더도그마(언더독+도그마)’라는 용어는 약자는 선하게, 강자는 나쁘게 여기는 그릇된 믿음을 말한다. 이는 사회적 판단을 혼란케 한다. 민 대표와 하이브 사이 갈등의 핵심은 ‘회사 찬탈 시도’ 여부다. 하이브 측은 민 대표와 무속인이 주고받은 SNS 메시지, 민 대표와 어도어 임원의 대화록을 근거로 그가 하이브 자회사인 어도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대화 속에 풋옵션 행사, 권리침해 소송 제기, 재무적 투자자 구함 등의 계획이 있었다. 민 대표는 인터뷰에서 대화 내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불법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본사 앞. 판사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해임 의결 중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으나 민 대표가 그룹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어도어를 독립적인 방법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결정문에 명시했다. 뉴스1

판사는 민 대표 해임 의결 중지 가처분을 인용했으나 결정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룹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의 발행 주식을 매도하도록 함으로써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이 어도어를 독립적인 방법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어도어 부사장과 함께 모색하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언더도그마는 옳고 그름을 왜곡한다. 성경 출애굽기에 쓰여 있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이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 영리한 언더독 행세는 진짜 선량한 약자의 억울한 사정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마치 가난을 훔치는 것처럼.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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