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고마워…20㎏ 다이어트, 심장병 사망자도 사라졌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인류에게 큰 고통을 주지만 지나가는 병이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적이 따로 있다. 비감염성질환(NCD)이다. 고혈압·당뇨병·비만·심장병·뇌졸중·만성폐질환·암 등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4100만명이 이들 병으로 숨진다. 전체 사망의 74%이다. 1700만명은 70세 이전에 숨진다.
한국도 사망자의 74.3%(2022년)가 NCD 때문에 숨졌다. NCD 사망자의 77%가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 발생한다. WHO는 2030년까지 NCD 조기 사망을 3분의 1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고, 회원국이 강력한 정책을 긴급하게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은 실태조사, 예방 활동 등으로 비교적 잘 대응하지만, 개도국은 매우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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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NCD 관리 현장
생계 구호→건강 증진 진화
고혈압·당뇨병 처음 알게 돼
건강 좋아져 한국에 더 호감
」
세계 사망의 74% NCD 탓
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 개도국 원조사업이 생계 구호 차원에서 이제는 NCD 관리로 진화했다. 기자는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구인 프렉프노우의 '디지털 헬스를 활용한 NCD 관리 사업' 현장을 다녀왔다. 이 프로젝트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시민사회협력사업이다. 사업비(8억원, 2022~2024년)의 70%를 코이카가 대고 나머지는 한국건강관리협회(이하 건협)와 전북대가 댄다. 프렉프노우구 2개 동 주민 3000여명을 건강검진 해서 고위험군 600명을 선별해 집중 관리한다.
고위험군 25명가량을 묶어 18개 건강생활클럽(클럽당 약 25명)을 만들었고 6개 더 늘릴 예정이다. 참여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고, 이들이 걸음 수·혈압 등을 측정해 스마트폰 앱에 입력한다. 하루 5000보, 주 3회 이상 걸어야 한다. 클럽 회원이 모여 거의 매일 30분~1시간 건강댄스를 한다. 클럽마다 동료 교육자(PE)를 선정해 관리 책임을 분담한다. 소정의 시험을 통과해야 PE가 된다. PE가 클럽 회원 참여를 독려하고 공복혈당·허리둘레·혈압 등의 지표를 관리한다. 나빠지면 병원행을 권한다. 월 75달러 수당이 나간다.
"끼니마다 맥주 6병, 이제 노"
3일 오전 9시 프렉프노우 후송병원 검진 대기실에서 NCD 교육이 한창이다. 튀긴 음식을 즐기는 주민들의 식습관을 교정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옆방에서는 건협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건강검진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검진이란 걸 처음 받는다.
썬 소페아(43·차표 판매)는 2022년 8월 NCD 교육을 받았고 10월 사업에 참여했다. 지금은 PE로 활동한다. 그는 난생처음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는 과거 배불뚝이 사진을 보여줬다. 키 156㎝에 몸무게 70㎏. 비만이었다. 끼니마다 맥주 6~7병을 마셨다. 에너지 음료를 달고 살았고, 볶음밥·튀김을 즐겨 먹었다. 밤 11~12시 야식을 빠뜨리지 않았다. 건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싹 달라졌다. 맥주·에너지음료를 끊는 등 식습관을 바꿨다. 매일 2만보 걷고 30분 건강댄스를 한다.
그랬더니 20개월 만에 50㎏으로 줄었다. 인터뷰 도중에 소페아가 갑자기 일어나 윗옷을 걷었다. 날씬한 배를 자랑했다. 그는 "참여 전에는 몸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부정맥 증세), 관절통·두통에 시달렸지만 좀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며 "지금은 다 사라졌다"고 말한다.
5일 오전 프놈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달려 프렉노우 마을에 갔다. 동네 주민 30명가량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흥이 넘치고 동작이 일사불란하다. 꺼이 짠 띠(62·여)는 몸무게를 12㎏ 뺏고 관절통이 줄었다. 매일 30분~1시간 이웃과 함께 건강댄스를 한다. 건협이 알려준 대로 야채를 삶아서 먹고, 하루 3~5캔 먹던 맥주를 끊었다. 그는 "살이 빠지니 남편(54)이 보기 좋다고 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국에서 이런 걸 가르쳐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한다.
"한국 NCD 예방사업 확대를"
이 지역 주민들은 살찌는 게 나쁘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살이 쪄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고 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몰랐다. 프랙프노우 후송병원을 찾은 피이 분쌍(58)은 "하루 네 번 식사를 두 번으로 줄였다. 담배는 끊었고 술은 가끔 한 캔 마신다"며 "배가 쏙 들어가서 옷을 새로 샀다"고 말했다.
빈민촌인 언동마을에서 만난 싸잇 싸론(57)은 "주민들이 가난해서 건강에 신경을 못 쓴다. 쌀밥을 많이 먹고, 돈 있으면 막 사 먹고, 40도짜리 술(소주와 비슷)을 많이 먹었다"며 "매년 심장병으로 한두 명 숨졌는데, 지난 3년 사망자가 없다"고 말한다. 당뇨합병증도 생기지 않았다. 그는 "정부에서 에이즈·말라리아 등을 알려줘 감염병만 알았지 고혈압·당뇨병이 뭔지도 몰랐는데 한국인이 가르쳐줘서 알게 됐다"고 말한다.
쿡로카 지역의 손 신(65) 동장은 "이 동네는 병원이 없고 보건소와 약국 5곳이 있다"며 "주민들이 이제는 운동과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게 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한다. 캄보디아 정부도 큰 관심을 보인다. 보건부 히로 콜 예방의약보건국장이 이 프로젝트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콜 국장은 "15년 전만 해도 모자보건사업(산모와 신생아 건강증진)을 가장 중시했으나 지금은 NCD 사업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한국의 프로젝트가 더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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