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심리만화경]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한 토크쇼에서 가수 싸이가 예전 대학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호응하며 노래를 즐겼는데,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촬영하며 공연을 본다면서, 그래서 자신은 이렇게 외친다고 이야기했다. “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핸드폰으로 촬영하기보다는 공연을 즐기는 데 더 집중하길 원하는 공연자의 마음일 것이다. 이는 인지 심리학적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된다. 인간의 주의 용량은 한계가 있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핸드폰 촬영에 주의를 할당하면, 공연에 집중할 주의력이 작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반대의 말이 떠오른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여행을 가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애쓴다. 사실, 사진 속 그 장면은 나의 경험과 온전히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진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 이 경험을 떠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력은 형편없다. 우리의 경험 중 매우 일부분만이 저장되고, 그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힌트를 주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 정보들은 연관 있는 것들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힌트를 보면 관련된 정보들이 함께 떠오른다. 이런 힌트를 심리학에서는 인출단서라고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은 너무나도 훌륭한 인출단서이다.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물리적인 것만이 인출단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감정도 인출단서가 될 수 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서 소주 한잔할 때, 예전 연인과 헤어졌을 때 들었던 노래가 생각나는 것도 슬픈 감정이 인출단서로 작동한 결과이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지금 경험이 잊힐까 두려워 핸드폰에 그 경험을 담아 두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간다. 하지만 단순한 기록을 위해 내 경험을 희생하는 것보다는 내 즐거움의 감정을 온전히 마음속에 기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최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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