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이끼 정원
마침 비가 내리니 ‘곶자왈’의 이끼가 더욱 푸르게 살아나 있었다. 제주 출장 중에 숲속 카페라고 하여 찾아가 보니, 곶자왈을 배경 삼아 만들어진 곳이었다. 넓이가 수천평에 이르러 커피를 마신 손님들이 곶자왈 숲을 걸어 산책할 정도의 동선도 나왔다.
제주의 독특한 돌숲 곶자왈에선 화산석 돌덩이 틈에 나무와 함께 양치류, 이끼가 뒤엉켜 자란다. 이 곶자왈이 지금까지 보존이 된 이유는 농사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 쓸모없던 곶자왈이 잘 살아남아 제주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독특한 숲에 사는 60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동물들은 이제는 정말 소중한 환경 자원이다.
곶자왈은 얼핏 보면 자연 스스로 만든 숲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람과 식물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원래는 상록수·낙엽수가 골고루 자랐지만, 숯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수백 년간 벌목을 지속하자, 결국 밑동까지 잘려나가도 옆구리에서 다시 가지를 뻗어주는 낙엽수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밑에 흙이 없어도 생존이 가능한 이끼와 고사리를 포함한 양치류는 이 숲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이 곶자왈의 주력 식물인 이끼는 4억5000만년 전에, 양치류는 3억5000만년 전에 출현했다. 이 오래된 화석과도 같은 식물은 탄소와 이산화질소는 물론이고,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많은 공해물질을 흡수하고 분해하는 역할도 한다.
비 오는 곶자왈 카페에서 함께 간 지인이 내게 물었다. “이런 이끼 정원은 서울에서도 만들 수 있나요?” 나의 대답은 “환경을 봐야 할 것 같아요”였지만, 분명한 건 제주의 이 곶자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로마신화 속에 등장하는 ‘게니우스 로키(Genius Loci, 장소의 혼)’라는 말처럼, 장소의 신성함과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원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그 답은 내가 살고있는 땅이 품고 있는 돌·흙·식물·기후 등 그 모든 어울림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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