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대한항공 정지석 “나만 잘하면 5연패할 수 있다”

김효경 2024. 6. 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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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정지석

“저만 잘하면 5연패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29)이 또 한번 우승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지석은 V리그 간판이자 국가대표 주축 선수다. 하지만 지난 시즌엔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심해져 지난해 9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재활 이후 돌아온 소속 팀에서도 코트보다 웜업존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대한항공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 사진 한국배구연맹

정지석은 ‘만능 선수’로 불린다. 통산 득점 9위(3845점), 서브 득점 2위(377개), 리시브 9위(3752개), 디그 12위(1997개), 블로킹 17위(448개) 등 공격과 수비 모든 부분에서 리그 정상급 기량을 갖췄다. 하지만 부상 탓에 코트에서 뛰지 못하니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최근 경기도 용인 대한항공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정지석은 “스스로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또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임신 중인 아내도 눈물을 흘렸다. ‘태교에 좋지 않으니 울지 말라’고 했지만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정지석은 지난 4월 챔피언결정전에선 맹활약을 펼치면서 이름값을 해냈다. OK금융그룹과의 챔프전 3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59점을 올렸다. 대한항공은 정규 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최초로 통합 우승 4연패를 달성했다. 챔프전 MVP도 정지석의 차지였다. 정지석은 “허리 뿐만 아니라 다리도 좋지 않았다. 챔프전 때도 진통제를 두 세 알 먹고 뛰었다”고 밝혔다.

부상에서 회복한 뒤 챔피언결정전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한 정지석은 지난 1월 태어난 딸을 안고 우승의 기분을 만끽했다. 딸 이름(아린)도 직접 지었다는 그는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고, 미뤄왔던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지난 1월 태어난 딸 아린을 안고 미소짓는 정지석. 사진 한국배구연맹

정지석은 지난해 선천성 난청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유전성 질환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증상이 심해져 병역 면제를 받았다. 난청 탓에 작전 지시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입 모양을 봐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어릴 때는 부끄러워 밝히지 못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정지석은 “배구 경기에선 사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진 않다”고 했다.

청각 장애를 겪으면서 정지석은 자신처럼 희귀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여러 차례 치료비를 내놨다. 이뿐만 아니라 기회만 있으면 산불 피해 복구 성금, 수재의연금, 유소년 배구 장학금 등을 쾌척했다. 정지석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금을 낼 계획”이라며 “(한)선수 형이 기부하는 걸 보며 자극을 받았다. 다른 선수들도 동참하면 좋겠다”고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정지석은 비시즌인 요즘 다시 재활 훈련을 하고 있다. 정강이 피로 골절 진단을 받아 8월까지는 제대로 훈련할 수 없다. 하지만 재활 훈련을 잘하면 다음 시즌 개막전에는 문제없이 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주포 임동혁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공백이 생겼지만, 외국인 드래프트 1순위로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를 영입했다. 정지석이 복귀한다면 충분히 5연패를 노릴 수 있다.

대한항공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 사진 한국배구연맹


정지석은 자타공인 '배구 영상 매니어'다. 최근 열리고 있는 발리볼네이션스리(VNL) 영상은 물론 이탈리아, 폴란드 리그도 틈틈이 봤다. 폴란드 아웃사이드 히터 토마시 포르난의 플레이를 많이 참고했다는 정지석은 "배구는 정말 끝이 없다. 내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했다. 사실 지난해 해외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기도 했었던 그는 "아시아쿼터 제도 덕분에 여러 스타일을 접할 수 있게 돼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정지석은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란 말이 있지 않나. 종목은 다르지만, 이종범 선배님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난 만능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용인=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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