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3남 김동선 부사장, 로봇·푸드테크에 꽂힌 ‘유통 사령관’ [CEO LOUNGE]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35)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신사업으로 로봇, 푸드테크를 앞세우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자사주를 잇따라 매입하면서 한화그룹 내 탄탄한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다.
한화푸드테크 판교 R&D센터 설립
한화그룹 내에서 김동선 부사장의 공식 직함은 4가지나 된다.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겸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 한화로보틱스 전략기획담당을 맡아왔다. 올 초에는 ㈜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수많은 직함을 갖춘 경영인답게 할 일이 산더미다. 김 부사장이 가장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분야는 푸드테크다. 말 그대로 식품과 기술을 결합한 분야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외식 사업부문 자회사인 ‘더테이스터블’의 사명을 한화푸드테크로 바꾸고 푸드테크 사업 강화에 나섰다. 한화푸드테크는 최근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에 1300㎡(약 400평) 규모의 푸드테크 연구개발(R&D)센터를 열었다.
연구실, 시뮬레이션룸, 푸드테크쇼룸 등으로 이뤄진 R&D센터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혁신 콘텐츠를 생산한다. 로봇 기술을 접목한 조리 자동화 솔루션과 브랜드, 메뉴 개발을 다룬다. 모듈 시스템 제작 등 주방 자동화를 통한 ‘첨단 레스토랑’ 구현을 목표로 앞세웠다. 내부적으로 한화푸드테크 R&D센터가 글로벌 푸드테크 시장 진출에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성과도 하나둘씩 나오는 중이다. 한화푸드테크는 올 2월 미국의 로봇 제조 피자 브랜드 ‘스텔라피자’를 인수한 뒤 로봇 제조 피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텔라피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수장을 맡은 글로벌 우주항공 기업 ‘스페이스X’ 출신 엔지니어들이 2019년 설립한 브랜드다. 48시간 저온 숙성한 피자 반죽을 로봇이 조리하는 완전 자동화 방식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다. 김동선 부사장은 “향후 식음 서비스 산업의 성패는 푸드테크의 적극적인 활용에 달려 있다. 한화푸드테크 R&D센터에서 탄생한 여러 기술이 일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식품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한화 FA사업부 내 협동로봇, 자율주행로봇, 무인운반로봇 등의 사업을 분리해 로봇 전문기업 한화로보틱스를 출범시켰다. ㈜한화가 지분 68%,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32%를 보유했다. 로봇은 한화그룹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핵심 사업이다. 특히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협력하는 로봇인 협동로봇의 경우 식품을 비롯해 백화점, 호텔 등 리테일 분야에서 활용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한화로보틱스는 서비스 로봇 역량을 호텔, 백화점, 외식 등 그룹 내 유통 사업에 접목시켜 시너지를 낸다는 계획이다.
김 부사장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외식 사업도 순항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 선보인 미국 3대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브가이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23개 국가에서 18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글로벌 햄버거 브랜드다. 아시아에서는 홍콩,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마카오에 이어 여섯 번째로 한국에서 오픈했다. 파이브가이즈 브랜드 유치부터 서울 강남대로 1호점 개점까지 김 부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1호점 흥행에 힘입어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 서울역에 잇따라 점포를 열었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104억원 매출을 올렸고 올 1분기 매출 87억원을 기록해 시작이 괜찮다. 한화갤러리아는 향후 5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15개 넘는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자사주 매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 5월 10일까지 총 137회에 걸쳐 자사주를 매입했다. 총 449만9860주, 매수 금액은 55억8818만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한화갤러리아 지분을 2.29%까지 늘렸다.
한화갤러리아는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가 36.15%로 최대주주고 김동선 부사장이 2대 주주다. 이어 한화솔루션이 1.37%를 보유했다. 재계 관계자는 “김동선 부사장이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를 기반으로 한화그룹 유통부문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자사주를 잇따라 매입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유통·건설업 꿰차며 경영 보폭 넓혀
김동선 부사장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그룹 핵심 사업인 우주항공·방산·에너지·조선,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업에 주력하는 동안 막내 김동선 부사장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화건설에서 일했지만 일신상 사유로 2017년 회사를 떠났다. 2020년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 잠시 몸담았다 그해 말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담당(상무보)으로 복귀했다. 당시만 해도 그룹 내 존재감 또한 별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이후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을 맡으면서 유통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다. 본업인 백화점을 넘어 로봇, 푸드테크 등 신사업 성과를 내는 데 힘써왔다. 여세를 몰아 건설업까지 발을 들여놨다. 김 부사장은 올 초 ㈜한화 건설부문 해외사업본부장을 맡았다.
김동선 부사장이 점차 경영 보폭을 넓히지만 걱정 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로보틱스를 비롯해 ㈜한화 건설부문 등 4곳 부사장에 올랐지만 아직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전략본부장, 전략담당임원 등 핵심 보직을 맡았음에도 정작 미등기임원 신분이다. 아직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파이브가이즈 등 햄버거 프랜차이즈 사업만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잖다. 파이브가이즈를 비롯한 식음료 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김동선 부사장이 몸담은 한화갤러리아 실적도 그리 좋지 않다. 지난해 한화갤러리아 매출은 전년 대비 18.43% 감소한 434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3.73% 줄어든 98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손실만 301억원에 달할 정도다. 핵심 사업인 백화점, 호텔부문이 극심한 부진에 시달린 탓이다.
그룹이 우주항공, 방산 등 첨단 제조업 성장에 주력하는 만큼 유일한 소비재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도 지난해 432억원의 순손실을 내 적자로 돌아섰다. 로봇, 푸드테크 사업에서 성과를 내더라도 본업인 백화점, 호텔 사업이 살아나지 않으면 김동선 부사장 경영권에 힘이 실리기 어려운 구조다.
“김동선 부사장이 형님 못지않게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수치로 증명받기는 어려운 단계다. 경영 보폭을 넓힌다지만 여러 사업을 이끌다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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