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다음은 AI 소프트웨어”
올해 주식 시장에 인공지능(AI) 돌풍이 몰아친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AI 테마 강세가 식을 줄 모르는 분위기다. 다만 지금까지 AI 테마는 하드웨어 업체에 수혜가 집중됐다. 최근 들어 소프트웨어 관련주에도 조금씩 매수세가 옮겨붙는 분위기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가 신규 AI 소프트웨어를 선보이며 관련 종목에 관심이 집중된 영향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수혜주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SDS·한컴·더존비즈온 ‘눈길’
지난해부터 이어진 AI 돌풍은 올해도 지속되는 분위기다. AI 칩 제조사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들어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6월 4일 종가 기준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연초 이후 135%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 상승률(12%)을 10배 이상 웃돈다. SK하이닉스 주가도 해당 기간 37% 올라, 코스피지수 상승률(0.3%)을 크게 앞질렀다.
이처럼 AI 열풍 속 투자 수요가 하드웨어 업체에 집중됐지만, 최근 들어 소프트웨어 업체에도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신규 AI 모델 공개가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MS는 지난 5월 열린 연례 최대 개발자 콘퍼런스 ‘MS 빌드 2024’에서 ‘AI 비서’를 활용한 업무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오픈AI GPT를 기반으로 개발한 자사 AI 서비스 ‘코파일럿’의 업그레이드 기능을 대거 새롭게 선보인 것. 코파일럿의 새로운 버전은 이메일 모니터링이나 데이터 입력 등 단순 작업 처리뿐 아니라 세계 각국 언어로 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AI 기반 비디오 번역 기능을 제공한다.
같은 시기에 구글도 자사의 AI 최신 모델인 ‘제미나이 1.5 프로’를 공개하고, 이를 탑재한 검색엔진을 선보였다. 새롭게 공개된 엔진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검색할 수 있고, 검색 결과를 대화 형태로 제공하는 기능이 적용됐다. 이와 함께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AI 비서 ‘프로젝트 아스트라’도 함께 내놨다. AI가 사람처럼 보고 듣는 데다, 음성으로 대화하면서 이용자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기대감에 5월 한 달간 MS와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이 기간 MS는 7%, 알파벳은 6% 올랐다. 또 다른 빅테크 메타 주가 역시 같은 기간 9% 상승했다. 최근 새로운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인 ‘라마3’를 공개한 영향이다.
국내에서도 AI 소프트웨어 업체를 향한 관심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삼성SDS, 한글과컴퓨터, 더존비즈온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이들 모두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삼성SDS는 기업용 생성형 AI 서비스 ‘브리티 코파일럿’을 지난 5월 선보였다. 업무에 빈번하게 사용하는 메일, 메신저, 문서 관리 등에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한 솔루션이다. 기업용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클라우드 보급과 함께 순차적으로 성장세가 예상된다는 것이 증권가 분석이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제시한 삼성SDS 목표주가는 평균 21만4333원. 6월 4일 종가(15만8200원) 대비 35% 높은 수준이다.
한글과컴퓨터도 주목해야 할 업체다. 지난 4월 선보인 ‘한컴 데이터 로더’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한컴 데이터 로더는 PDF 문서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AI의 학습을 쉽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연초 생성형 AI 스타트업 포티투마루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전자문서 전문 기업 클립소프트를 인수하고, 스페인 AI 생체인식 기업 페이스피에 투자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5월 한 달간 주가는 8% 상승했다. 추가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이 제시한 한글과컴퓨터 평균 목표주가는 6월 4일 종가(2만4600원) 대비 43% 높은 3만5200원이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기업 더존비즈온도 AI 소프트웨어 관련주로 거론된다. 올해 초 AI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한 더존비즈온은 ERP10·아마란스10·위하고 등 핵심 제품에 AI를 적용한 신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상반기 내 서비스를 시작하고, 하반기부터는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다. 증권가가 제시한 더존비즈온 목표주가는 평균 7만750원. 6월 4일 종가(6만400원) 대비 17%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고 내다본 셈이다.
AI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MS 협력사도 빼놓을 수 없다. 에스피소프트가 대표적이다. 에스피소프트는 데이터 연결과 상호작용 관련 기술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MS를 비롯해 삼성전자, 카카오, SK텔레콤 등 국내외 고객사를 다수 확보했다. 오는 6월 14일에는 MS와 함께 코파일럿 라이선스 국내 시장 확대를 위한 세미나도 개최한다.
MS의 클라우드 협력사인 크라우드웍스에 대한 투자자 관심도 상당하다. 최근 LLM 모델 개발 수주가 늘어나며 AI 데이터 수요가 증가한 데다, 신사업인 AI 교육 플랫폼이 성장하며 올해 흑자전환이 점쳐진다. 내년부터는 클라우드 서비스 진출을 통해 외형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증권가는 내다본다.
이 밖에도 AI 언어 데이터 기업 플리토, AI 기반 음성인식 기술을 제공하는 셀바스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최적화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 파이오링크 등이 전문가 추천을 받았다.
최승환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AI 영역은 저부가가치의 단순 작업 위주였다면 생성형 AI 등장 후 코딩·창작·번역 등 지식 산업과 서비스업으로 영역이 크게 확장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AI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 조성됐다는 점에서 옥석 가리기를 통한 투자 기회는 충분하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옥석 가려 집중 투자하라
단, AI 관련 사업을 영위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투자하면 위험하다. 과거 ‘닷컴버블’ 시절 수많은 기업이 생겨났다 사라진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AI가 화두로 떠오르며 수많은 기업이 AI 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수익화에 성공한 기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글로벌 기업도 AI 서비스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의 성과를 확인한 후 국내 AI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한다. 이준호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생성형 AI 경험이 대중에게 보편화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국내에서는 삼성SDS를 제외하고 내년까지 AI가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수익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투자자는 글로벌 기업 성과를 확인한 후 국내 기업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AI를 통한 기업의 수익화 전략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앞으로는 단순히 AI 사업 영위가 아닌 수익화 전략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본업이 튼튼한 가운데, AI를 더해 기존 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특히 AI 관련 매출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수익화 전략 여부가 중요하다. 투자자는 경쟁력 있는 소수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최승환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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