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국내냐…상장說 솔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쌓여가는 현금•잉여금에도 불구하고 ‘잠행’이 길어지자 블록체인업계와 시장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수익 다각화를 위해 잔뜩 벌였던 이종(異種) 사업이 대부분 부진한 가운데 성장 가능성이 낮거나 본업과 시너지가 불투명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사업 조정•재배치도 목격된다. 일각에서는 두나무가 잔뜩 벌였던 자회사를 대거 정리하고 지배구조를 정비한 뒤 가상자산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금융 업종에서 질적 도약을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회사 재편, 신사업 발굴과 맞물려 숙원 과제로 평가받는 미국 상장을 물밑에서 검토 중인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자회사 신사업 줄줄이 손실
올 상반기 가상자산 붐을 타고 두나무 역시 호실적을 기록했다. 올 1분기 매출액만 지난해 연간 매출액 절반 정도다. 실적이 굳건하지만 두나무 측 속은 편치 않다. 본업은 가상자산 시황 의존도가 높아 손익 변동성이 크다. 두나무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21년 68%를 웃돌았지만 2022년 4%대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ROE는 다시 20%까지 회복했다. 국내 상당수 상장기업 ROE가 10%를 밑도는 점에 비춰 두나무 ROE가 낮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ROE가 들쭉날쭉하다는 건 본업에서 벌어들인 현금흐름을 신사업 투자로 연결 짓는 선순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단 의미다. 지난해 말 기준 두나무가 쌓은 이익잉여금은 3조2906억원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과거 잔뜩 벌였던 자회사•신사업 성적표는 신통치 않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두나무가 운영 중인 자회사는 모두 14곳이다. 이 가운데 두나무앤파트너스, 퓨쳐위즈, 드림트리혁신성장제1호사모투자 등 3곳을 제외하면 지난해 모두 순손실을 기록했다. 대부분 본업과 연결성이 낮아 뚜렷한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반면, 두나무가 사업 구조를 정비 중인 정황도 목격된다. 수익이 나지 않거나 본업과 연결성이 낮은 자회사를 매각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연예기획사 르(rrr)를 매각한 데 이어, 올 초 모터스포츠 운영사 오토매닉스 지분도 전량 매각했다.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블록체인업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두나무가 상장을 목표로 지배구조 정비를 추진 중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상장을 위해서는 결국 자회사 매각 등 사업 구조 정비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美 상장 가능성 주목
신사업 확장할까
최근 주주총회 발언과 몇 가지 단서에 주목해 두나무가 신사업 확장•상장 등을 추진 중일 것으로 보는 시선도 확산하고 있다.
IB업계에서는 국내는 물론 미국 상장도 가능한 선택지로 본다. 이미 나스닥에선 비교기업군(코인베이스)이 존재하는 데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유동성 덕분에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수월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존재해 창업주나 경영자가 지배력 훼손 우려를 덜 수 있다.
미국 상장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 국내 법인을 100% 보유하는 미국 법인 설립 후 이를 상장하는 플립(Flip) 전략이다. 둘째, 해외 주식예탁증서(DR) 상장이다. 예탁증서는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주식(본주)은 그대로 두고 해당 본주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증서다. DR을 미국 증시에서 발행하면 ADR, 유럽 증시에서 발행하면 EDR이 된다.
IB업계에서는 플립 구조 전환을 통한 미국 직상장도 두나무 선택지에 들 수 있다고 본다. 플립 구조 기반 미국 직상장의 교본으로 불리는 곳이 쿠팡이다. 플립은 국내 법인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해외 신설 법인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내 법인 주식을 해외 법인에 양도해 해외 법인 신주를 받는 식이다. 즉, ‘미국 두나무’를 설립하고 ‘한국 두나무’를 미국 두나무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때 국내 법인 주주가 현금을 받지는 않지만 해외 법인에 주식 양도가 발생하므로 해당 주식 가치만큼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두나무 주요 주주와 IB업계에서 플립 구조 전환을 통한 미국 직상장 가능성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난 주주총회 때 남승현 두나무 최고재무책임자(CFO) 발언이다. 남 CFO는 상장과 신사업 계획 관련 주주 질의가 빗발치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기는 했다. 주주와 IB업계가 주목한 대목은 뒤이은 발언이다. 그는 “내부 의사결정과 상관없이 바로 (상장)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는 계속하고 있다”며 PWC삼일회계법인에 재무제표 감사를 2년 연속 받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두나무는 2021년까지 우일회계법인 감사를 받던 중 2022~2024년 회계연도 감사인으로 삼일회계법인을 선임했다.
미국 상장 경험을 갖춘 IB업계 관계자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미국회계감독위원회(PCAOB)에 등록된 회계법인 감사를 받은 최근 3년간 사업보고서 제출이 필수다”라며 “남 CFO가 주총에서 상장 사전 준비의 근거로 삼일회계법인 감사를 받고 있다고 언급한 대목은 미국 상장에 대해 실무적인 검토가 상당 수준 이뤄진 것으로 비춰진다”고 짚었다.
PCAOB는 미국 상장사 회계감사를 감독하는 비영리법인이다. 2002년 ‘엔론’ 사태를 겪으며 회계부정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설립된 조직으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제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을 중심으로 소수 회계법인만이 PCAOB에 등록된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재무 신뢰도 제고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2024년 사업보고서가 작성되는 2025년 3월 이후가 되면 PCAOB 사업보고서 3개년 요건이 충족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두나무가 미국 직상장을 추진할 경우 비교기업군으로는 코인베이스가 첫손에 꼽힌다. 코인베이스는 거래량 기준 미국 최대•세계 2~3위 가상자산 거래소다. 코인베이스 시가총액은 약 600억달러(약 82조원)로 두나무 장외 시총(약 4조5000억원)의 18배를 웃돈다. 코인베이스는 상장에 앞서 증권사 인수 등을 통해 ‘증권성 논란’을 불식시키려 애를 써왔다.
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증권성 여부는 ‘투자계약증권’ 해당 여부로 판별한다. 투자계약증권이란 투자자가 타인과 공동으로 특정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배분받기로 한 약정이 담긴 증권을 뜻한다.
현재 증권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가상자산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둘뿐이다. 나머지 가상자산은 증권성 이슈에 발목 잡혀 가상자산 거래소 상당수는 상장폐지 위험에 시달려왔다. 코인베이스는 중장기적으로 비트코인 등 대표 가상자산 증권성 이슈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제도권 편입을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증권사 인수를 추진했다.
플립 구조로 미국 상장 땐 해외 법인에 주식 양도가 발생하므로 해당 주식 가치만큼 양도소득세(27.5%)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로 지목된다. 다만, 주요 주주가 미국 체류 땐 이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국내법상 양도소득세 납부 의무는 ‘거주자’만 부담한다. 소득세법상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개인’으로 규정된다. 즉, 소득세법상 ‘거주자’ 요건을 우회한다면 미국 직상장 시 양도세 부담을 큰 폭 덜 수 있다.
이에 대해 두나무 측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다”며 “신사업과 상장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며 각별한 노력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다각도로 검토 중 일뿐 현 시점에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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