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를 보고 하는 말 "이놈의 나라는 항상 이랬어"

김형욱 2024. 6. 11. 16: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고질라 마이너스 원>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 포스터.
ⓒ 넷플릭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 오도섬 비행장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한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시키시마 소위가 죽음의 임무에서 도망쳐온 것이었다. 해변에서 심해어들이 죽어 떠오르는 걸 목격한 시키시마, 그날 밤 해변에 공룡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괴물 '고질라'가 출현해 비행장에서 근무 중이던 대원들을 몰살시킨다. 시키시마와 정비반장 타치바나만 빼고.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시키시마, 하지만 집은 무너졌고 가족들은 이미 몰살 당한 상태였다. 실의에 빠져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채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 우연히 노리코를 만난다. 그녀는 고아 아키코를 키우고 있었는데 시키시마는 얼떨결에 둘을 집에 들인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른다.

1946년에 이르러 시키시마는 기뢰 제거 일을 시작한다. 많은 돈을 주지만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1년여간 열심히 돈을 벌어 집다운 집도 장만한 시키시마, 그런데 고질라가 핵실험에 피해를 입고 상처를 회복하며 더 거대해져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도쿄로 진격 중인 고질라, 시키시마 일행이 시간 벌기용으로 투입되는데… 과연 그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애초에 그는 살 마음이 있을까?

고지라 탄생 70주년으로 선보인 수작 영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유일한 일본산 캐릭터 고지라(아래 '고질라')는 1954년 영화 <고지라>로 세상에 처음 선보인 후 70여 년간 영화는 물론 게임, 만화, TV 애니메이션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콘텐츠들에서 오마주하고 패러디했다. 최초의 조악한 모습이 수십 년이 지나도 유지되는 게 신기하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걸까.

일본에서 2023년에 고질라 탄생 70주년으로 선보인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내외의 유수 영화제들에서 시각효과상을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서 수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많이 다뤄지지 않았고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에야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접할 수 있었다.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아무래도 민감할 것이다. 하여 다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넷플릭스로라도 공개되었으니 들여다보면 민감한 부분들에 대처한 노력이 보인다고 할까. 시각효과뿐만 아니라 각본과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질라의 변천사 와중에 고질라의 상징성

고질라는 애초에 상징성이 다분한 캐릭터였다. 입에서 방사선을 내뿜으며 지나가는 모든 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니 만큼, 핵폭탄이라는 제어 불능이자 파괴신 같은 재앙에의 공포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가 행했던 멈출 수 없는 광기와 악행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한다. 근원적 공포와 흑역사가 일본을 영원히 지배할 거라는 두려움도 함께.

그런 고질라는 외계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가 되었다가 지금은 정의도 아닌 그렇다고 악도 아닌 자연의 힘 그 자체가 되어 다른 괴수들을 무찌르고 다닌다. 아무래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수인 만큼 상업적인 면모가 충만해 다른 성격의 갈래로 뻗어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흥행에 성공했으니 계속 만들어졌을 테고 말이다.

와중에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초창기로 돌아가 정치적인 상징성이 다분한 고질라를 선보였다. 나아가 개인적 이야기도 잘 버무렸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적절했다. 무엇보다 '고질라'가 비단 일본인뿐만 아니라 누구나의 근원적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상업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을 다잡았고 메시지도 충분히 전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고질라 퇴치에 발벗고 나선 민간인들

극 중에서 시키시마는 특공 임무에서 도망쳐 온 것도 모자라 고질라의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이들이 무수히 많았다. 모두 자신만의 전쟁이 남아 있었던 것. 하여 그들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고질라 퇴치를 발 벗고 나선다.

한편 핵실험 여파로 더 거대해진 고질라는 미국 정부는 물론 일본 정부도 나 몰라라 한다. 미국은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일본은 자국 군대가 없어서. 결국 민간이 해결해야 하는데, 극 중 대사처럼 "이놈의 나라는 항상 이랬어"라고 할 만하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이 입고 전쟁의 후과도 민간인이 해결하며 나라의 청사진조차 민간인이 그려야 한다.

알고 보면서도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은 시각효과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는 의미가 충분할 정도니 말이다.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자체로 상업적인 면모가 충만하다고 하겠다. 여러모로 적절했고 균형 잡힌 작품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되 현재를 자각하고 미래를 그려 나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