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안돼... 국회가 '새 통일방안' 중심 돼야 [넥스트브릿지]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권영태 기자]
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서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칼럼은 3.1절 대통령 기념사에서 시작된 새 통일방안 논의하는 데서, 22대 국회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권영태 부소장이 제안한다.
현 정부가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놓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말한 뒤, 대통령실과 통일부는 '새 통일구상'을 마련하고, 잠정적으로 올해 8.15 광복절에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정부의 발표와 더불어 주요 언론사에서도 사설을 통해 새로운 통일방안이 필요하다고 군불을 지피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다만 필자는 새 통일방안이 유의미한지, 어떻게 제정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차후에 더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은 자유에 방점을 찍은 통일방안의 추진이 우려된다는 점만을 간략히 밝히려고 한다.
참고로, 세계일보는 기사 <통일방안에 '자유민주주의'가 없다고?...실제론 23번 등장>(2024.3.14)를 통해 기존의 우리 정부 공식 통일방안에도 이미 '자유'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자유는 정말 소중한 가치다. 그런데 자유를 강조하는 윤 정부의 통일방안 추진을 왜 우려하는가? 북한 인권도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통일방안 추진을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는 자유에 방점을 찍는다고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 주요 인사들이 이해하고 있는 자유는 국민과 민족 전체를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부 비판 인사들에 대해 대놓고 국가위협세력 같은 표현을 쓰는 정부가 생각하는 자유를 제대로 된 자유라고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더욱이 현 정부에서 여러 분야에서의 자유권이 후퇴되고 있다는 내외적인 지적이 상당하다. 이런 정부가 자유를 강조하는 새 통일방안을 구상하여 발표한다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인권은 독립된 개념이 아니다. 인권은 자유권과 사회권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대 민주주의 법원리가 세계사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일부 강자(부르주아지)들만의 자유를 의미했던 자유는 점차 모든 시민의 자유로 확대되어 왔다. 인권이 사회권을 또 다른 주요 축으로 구성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통일방안으로 인권을 화두로 얘기한다면, 자유권과 사회권 모두 강조하는 쌍두마차로 가야 한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둔 윤석열 정부의 사회권을 대표하는 복지·노동·소수자 정책들에 대해 많은 단체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니 자유와 인권의 보편가치를 담겠다는 현 정부의 새 통일구상이 협소한 이념에 갇혀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가 될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넥스트브릿지'의 '22대 국회가 해야할 과제와 정책 제안'라는 좋은 기획에 아이디어를 더하려, 지난 3월에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세력',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이라는 말이 안 나오니 조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걱정은 여전하다. 여당의 고위 관계자가 불과 얼마 전 야당을 향해 '국가위협세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억도 아직 여전하기 때문이다.
의회를 통과하는 통일구상이 필요하다
앞의 우려들이 북한과 통일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현 정부가 하는 일에 그저 딴지를 걸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가올 8.15 광복절에 예정되어 있는 새로운 통일방안 발표를 준비 중인 정부와 새롭게 시작하는 22개 국회에 성긴 제안이나마 드리고자 한다.
사실 국민들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이나 대북정책과 관련된 대통령의 메시지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통일방안 발표 이후 반대 정치세력은 이를 무시하거나 폄하했다. 사실 현 정부에서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놔도 몇몇 연구자들에게만 유의미한 분석 대상이 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필자가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탐구한 논문을 내지 않았더라면 개인적으로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통일방안에 대해 논문도 낸 적이 있고 연구를 많이 했다. 통일방안의 법적 성격에 대해 규명해보려고 했고 통일방안이 담아야 할 내용과 어떻게 발표되어야 할지 형식적 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더라도 통일방안이 헌정사적 관례로 헌법적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학술적으로 논증한 사람으로서 정부의 통일구상에 의견을 보태고 싶었다.
새로 통일방안을 발표한다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적 면에서 의회를 관통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연이어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 여대야소 국면이기 때문에 통일방안과 관련된 개인적 지론은 오해받을 수 있겠으나, 이미 2009년 필자는 논문을 통해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과 유사한 형식으로 '(가칭)통일방안 수립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통일방안을 국가의사로 확정하는 절차와 담아야 할 원칙과 내용에 대한 준거를 법률로 규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입법부인 국회가 더 대표성이 있다고 보는 개인적 소신에서 연유하는 것도 있지만, 과거 통일방안을 살펴보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절차적인 면에서 고민한 대안이 바로 통일방안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 내지 추인, 적어도 보고라도 하는 절차이다.
22대 국회가 통일방안 수립과 관련된 법률을 만들고, 그 법률에 따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부침없이 실행해 나갈 수 있는 통일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다. 차선으로는 대통령과 행정부 중심으로 앞서 우려되는 통일구상이 발표되어, 첨예한 갈등의 지점이 되는 상황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전역에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사자 통일론'
▲ 통일대교 통일대교 |
ⓒ 이정민 |
'통일방안 논의에서 국회의 중심적 역할'을 제안하며, 향후 뜨거울 통일논의에 필자의 견해를 밝혀두고자 한다. 논의에 조금이나마 촉매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가칭 <'사자' 통일론>이다. '사자'는 사회권과 자유권을 합친 말이다. 현 정부가 자유를 강조하기에 사회권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를 담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봤다. 그렇다고 사회권을 그저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도로 협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의 '사'는 사회권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가치는 사회권과 유사한 맥락이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선진 민주주의가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성이다. 유엔 차원의 사회적 가치 실현 주문은 ESG나 SDGs 같은 개념으로 이미 우리 사회에도 크게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사자 통일론은 전 한반도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분단 극북의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몇 년 전부터 이와 관련된 책을 쓰고 있는데 집필이 마무리되지 않아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소개하기로 한다.
민주화 이후 대북정책은 engagement policy('관여정책', 번역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그대로 영어 개념을 사용한다)에 입각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 같은 개념을 사용했고 학술적으로는 기능주의와 혼동되면서 나중에는 전략적 관점이 탈각되었지만 애초에는 북한을 변화시키자는 전략이었다. engagement policy 노선은 분명 민주화 이전의 대북정책보다는 나아졌다. 그렇지만 한계가 뚜렷한 시점이 됐다.
engagement policy 노선과 함께 인도주의 관점은 대북정책의 또 다른 주요 축이었다. 인도주의 관점은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공헌을 했다. 일각에서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쓰였다거나 망해야 하는 체제를 연장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굳이 인도적 지원과 경협의 성과에 색안경은 들이대지 말도록 하자. 그렇지만, 남쪽과 북쪽의 우열 관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engagement policy 노선은 북을 변화시키자는 관점이고 인도주의 프레임은 북은 열등하다는 시각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북을 변화시키지 말자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남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북이 열등하지 않다는 말인가? 사실 왜곡은 하지 말자.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여러 기준들에 따르면 북쪽이 남쪽보다 분명 부족한 지점들이 있다. 그렇지만 남과 북이 각기 긍정과 부정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체제 경쟁에서 이겼고 세계도 그렇게 돌아가니까 북한이 변해라? 북한이 어려우니까 도와주자? 일정 정도 인정되는 논리지만, 전적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제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분단 극복 패러다임은 다르게 얘기한다. 사회적 가치의 실현은 사회 혁신을 지향한다. 남도 북도 모두 문제점이 있다. 국제적으로 SDGs ESG, 국내적으로 12+1안 등으로 사회적 가치는 사회혁신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사자 통일론은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남북 각각이 사회 혁신을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곧, 남도 북도 동시적 변화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자 통일론은 한 마디로 '전 한반도 차원의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간략히 표현할 수 있다. 남과 북이 각각 자기 사회의 혁신을 수행하고, 전 한반도의 범위에서 사회적 가치를 공동의 노력으로 실현하자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일방의 승리나 우월이 전제되거나 당연시 될 수 없다.
남과 북이 각각, 그리고 남북이 공동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혁신의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대안은 여기에 있다. 남 주도의 통일 이후 예상되는 이등 시민 문제 또한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남북이 모두 혁신하려는 노력을 진행할 때 풀 수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활로는 남도 북도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혁신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22대 국회, 새 통일방안 발표 관심부터 가져야
현 정부에서 이미 새 통일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우려가 필자의 기우이길 바란다. 새 통일구상이 필자의 바람처럼 사회적 가치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훌륭한 공직자들과 학자들의 노력으로 자유와 인권의 보편가치나마 제대로 담은 새 통일구상이 발표되길 바란다.
22대 국회는 새 통일방안의 발표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미 발표된 통일방안은 다시 고치기 어렵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지 않도록 다만 몇 달이라도 몇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통일방안과 관련하여 어떤 내용이 준비되고 있는지 질의하고 자료도 받고 다수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애써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한양여대 ESG연구소 부소장. 북한학 박사. 전 한국NGO학회 이사, 남북학술교류위원. 좌표22 대표. 전 통일교육원 공공부문 통일교육 전문강사.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를 창립한 이후 통일교육의 버전업에 매진해왔다. '통일교육 에센스', '남도 북도 모르는 북한법 이야기', 'Life & Law', '우리가 불러온 노스코리언송즈 :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시리즈 I'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사교사인 아내와 함께 왕릉을 답사 중인데, 노스코리아 지역 왕릉 답사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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