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선 슈퍼팀인데... 한국 챔피언의 이유있는 수모
[이준목 기자]
한국 프로농구 챔피언 부산 KCC가 국제무대에서는 동네북이 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2024 FIBA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 중인 KCC는 조별리그에서 2경기 연속 대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KCC는 지난 6월 10일(한국시간) 열린 대회 조별리그 2차전 히로시마 드래곤 플라이즈(일본)와의 경기에서 30점 차(77-107)로 대패했다. 앞서 KCC는 샤흐다리 고르간(이란)과의 경기에서는 23점 차(79-102)로 무릎을 꿇은 바 있다.
2연패 늪에 빠진 KCC는 12일 열리는 펠리타 자야(인도네시아)와의 최종전을 승리한다고 해도 4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KCC는 최근 막을 내린 2023-24시즌 프로농구(KBL)에서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압도적인 기세로 상위팀들을 연이어 업셋하며 '5위팀 사상 최초의 챔프전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허웅, 라건아, 최준용, 송교창, 이승현 등으로 구성된 라인업은 국내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든 '슈퍼팀(Super team)' 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호화멤버였다.
KCC는 한국 챔피언 자격으로 FIB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한국, 중국, 일본, 이란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8개국 프로리그 우승팀이 아시아 클럽챔피언을 가리는 무대로 국제농구연맹(FIBA)이 주최하는 공식 대회다. 각국 리그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였다. KCC는 KBL 구단으로는 2019년 울산 현대모비스 이후 5년 만에 이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집안에선 슈퍼팀이라던 KCC는 집밖으로 나오자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KCC의 부진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KCC는 지난달 5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확정한 후 한 달 가까이 선수단이 휴식기를 가졌다.
이 기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각종 우승 행사와 미디어 인터뷰, 개인 일정 등을 소화하느라 분주했다. 전창진 KCC 감독은 지난달 다음 시즌 아시아쿼터 선수를 물색하기 위해 필리핀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실상 챔피언스리그 준비를 염두에 둘 여유가 없었다. 애초에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체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보너스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사이 우승의 핵심 멤버인 외국인 선수 라건아와 알리제 드숀 존슨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고, 급하게 단기계약으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알포조 맥키니와 디온 탐슨이 '알바'로 대회를 치러야 했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으로 기대를 모은 맥키니마저 샤흐다리와의 1차전에서 무릎부상을 당하여 이탈했고 2차전에서는 결장했다. 맥키니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도 복귀가 불투명하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국내 선수들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선수들은 지난 7일 대회를 위하여 출국 전까지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느라 국내에서 제대로 된 전술훈련 한 번 소화해보지 못했다. 또한 선수단은 현지 시간으로 7일 출국하여 8일 새벽에 개최지인 UAE에 도착하여, 선수단이 제대로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다음날 오후에 바로 샤흐다리와 1차전으로 대회 일정을 시작해야했다.
애초부터 참가에만 의의를 뒀다고 할 만큼, 좋은 경기력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전창진 감독도 대패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현재 경기를 치를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다"라고 솔직히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공식 대회에서 무기력한 경기력과 대패는 아쉬움이 크다. 국가대표팀의 국제경쟁력 하락에 이어, 클럽팀도 국제대회에서 졸전을 이어간다면 한국농구의 위상과 이미지에는 흠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실을 살펴보면 KCC만 대회 준비가 무성의했다고 탓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선수들은 정규리그에서 플레이오프, 챔프전까지 무려 6개월이 넘는 대장정을 소화하며 이미 녹초가 될대로 된 상황이었다. 선수들이 한창 휴식을 취해야 하는 비시즌, 그것도 6월은 각 프로구단이 계약과 이적 등으로 한창 선수단 재정비와 개편이 진행되어야 하는 시기다.
이런 때에 중동에서 열린 대회 개최 시기와 장소 등은 국내 농구계 일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물론 다른 팀들도 저마다 나름의 사정은 있고 리그와 클럽의 상황이 저마다 다른 만큼, 핑계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마땅한 동기부여도 없이 참가한 KCC 선수들에게, 낯선 아시아 강팀들을 처음 상대해야 하는 챔피언스리그까지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만일 울산 현대모비스가 2년 연속(2015-16) 우승을 차지했던 '아시아 프로농구 챔피언십'처럼 국내에서 개최되었거나 KBL 시즌 개막과 가까운 9-10월에 대회가 열렸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농구도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같은 국제 클럽대항전의 위상과 수요가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농구로서도 그에 대한 적응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명색이 한국 챔피언임에도, 억지춘향 식으로 머릿수 채우기를 위하여 국제대회에 참가했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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